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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신 하나님

새벽예배 2023.05.23 | 사무엘하 21장 1-14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21장 1-14절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왕이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바위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가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블레셋 사람들이 벧산 거리에 매단 것을 그들이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새벽 묵상

찬양인도 할 때마다 실수했던 한 단어 때문에 잊을 수 없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찬양입니다.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행하신 모든 것 완전하시니....후렴이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다 들어보셨죠?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데 저는 어디서 실수를 했는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너무 긴장해서 실신하신 하나님으로 부른 적이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죠. 제 실수를 보시며 하나님께서 실신하지 않으시고 다 용서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이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이 곡은 시편 150편 중에서 무려 73개의 시편을 지은 다윗이, 하나님을 표현했던 것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감동적인 표현들을 모아서 지은 곡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은 행하시는 모든 것이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이십니다. 내게 행하신 일들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참 좋으신 나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정말 이렇게 믿으십니까? 얼마나 표현들이 명확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도 삶 속에서 내게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마다 다윗처럼 이렇게 가슴 뛰게 하는 표현들을 잘 정리하시고 글로도 써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신앙의 후배들에게 또 다른 시편 151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곡의 여러 표현 중에서도 가장 하나님의 특징을 잘 표현한 것은 역시 제가 실수했던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바울은 그의 가장 내면적인 편지 고린도후서 1장 18절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여러분 이 미쁘시다라는 말이 바로 신실하시다라는 말과 똑같은 표현입니다. 똑같이 헬라어로 피스토스 믿을 만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믿을 만한 게 아니라 믿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미쁘신 것이 무엇인지 그 뒤에 덧붙여 썼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무슨 말입니까? 흔들림이 없는 것,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가장 신뢰할 것이 하나님은 미쁘시다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믿을만한 것들 의지하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 마시고, 신실하신 하나님만 믿고,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닮아 신실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신실한 삶은 말로만 “나 믿을만한 사람이야” 강하게 말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생각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실함은 바로 행동에서 보여져야 합니다.

기억하십니까? 어떤 구멍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이사 와서 가게에 처음 온 손님이 혹시 이 근처에 좋은 교회 없습니까? 물어보니까 고민도 하지 않고 요 앞에 교회요 하고 적극 추천하셨답니다. 그러자 손님이 주인 아주머니가 그 교회 교인이신가요?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왜 그 교회를 추천하십니까? 했더니 아주머니 왈,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옛날에는 그렇지 않던 교인들이 갑자기 외상값을 잘 갚더라구요 하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한 저와 여러분 되시되 삶으로 신실함을 실천하면서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 실제로 삶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그동안 베냐민 지파 세바의 반란으로 또 한 번 혼란의 한 때를 맞아야 했던 것을 정리하는 앞장 20장을 끝으로 파란만장한 혼란의 다윗왕국은 드디어 이제 안정의 시대에 접어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정치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자연재해의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1절 보십시오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년 기근이 있으므로” 삼년동안 계속해서 말 못할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간구합니다. 다시 1절 중간에 보십쇼. 이런 기근의 원인이 뭔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여러분 기브온 족속이 누구입니까? 기브온 족속은 여호수아 11장 19절에 나온 것처럼 히위 족속이라고도 불리는데 여호수아 9장에 보면 진멸대상인 가나안 7족속 가운데 하나로 자신을 숨기고 멀리서 왔다고 하면서 다 해어진 옷차림으로 꾸미고 이스라엘과 화친을 시도했던 족속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로부터 그들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비록 속아서 이루어진 약속이었으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약속을 파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 틈에 빈대처럼 끼어 살면서 성막에서 물을 긷고 나무 패는 거친 일들을 맡아 하며 겨우 생명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그만 사울왕 때에 갑자기 깨어지고 맙니다. 오늘 본문 2절 끝부분에도 “열심이 있으므로”라고 나오는데 사울왕은 이들을 열심히 무참하게 학살했습니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울의 칼에 죽임을 당했으니 이들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줄 사람은 없었고 그렇게 그냥 여러 세대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월이 지나 이제 다윗의 통치 말년에 이르러 하나님은 이들의 아픔과 원한을 기억하시고 3년이라는 흉년의 징벌을 내리시면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려고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특별한 이야기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1. 첫째로 하나님은 반드시 죄의 대가를 보응하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세대가 바뀌어도 시간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분이시기에, 비록 사울왕 때에 억울한 학살이요 잊혀진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정확하게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2절에 다윗은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브온 사람을 불러 3절 기브온 족속의 원한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 물어봅니다. 4절에 이건 은금으로 돈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5절과 6절에 사울의 자손 7사람을 달라고 하죠. 목매어 달겠다고 합니다. 결국 9절에 기브온 사람들이 산 위에서 사울의 후손 7명을 목매어 달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아니 이렇게 7명을 목매어 달려 죽게 내어주는 것이 뭐가 잘한 일이야 하신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건을 이 부분만 딱 뽑아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전체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사울이 죽인 기브온 사람들은 7명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수백배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자 공개적으로 이런 일을 허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모습입니다. 그냥 대충 넘어가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정확하게 사울 집안의 죄과를 물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국 영화중에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이란 영화를 보신적 있습니까? 참 감동이 오더라구요. 한국의 불안한 정치 상황에 억울한 국밥집 아들의 누명을 풀어주려 끝까지 싸우는 주인공의 모습, 목숨 걸고 진리편에 서는 주인공 변호사의 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이던지요.. 여러분 혹시라도 세상의 심판은 무전 유죄, 유전 무죄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정말 억울하게 권력과 사리사욕에 의해서 잘못 판단되어지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셨습니다. 사람은 잊어버려도 언젠가는 반드시 악인의 죄과를 물으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고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정확히 판단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주님 앞에 맡기면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은 이방인과 선민을 구별하시는 편협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사무엘하 기자가 이 본문을 빼고 기록할 수도 있었습니다. 기브온 족속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 기브온 족속은 소수, 숫자가 적은 족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데도 이 본문을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이방 여인 4명 다말, 라합, 룻, 밧세바 이들의 이름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하나님의 포괄적인 모습,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2절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첫째 아들이라고 무조건 택하시지도 않았고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셨고, 므낫세가 아닌 둘째 아들 에브라임 머리 위에 야곱의 오른손의 축복이 주어지게 하셨고, 위의 일곱 형들을 다 제치고 막내 여덟 번째인 다윗으로 이스라엘 최고의 왕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신 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구하는 이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기브온 족속은 그냥 아무런 신앙도 없이 간절히 그냥 구한 것이 아닙니다. 6절에 다윗왕께 사울왕의 후손 7명을 청하고 목매어 달겠다는 구절 바로 앞에 쓰여진 특별한 단어가 있습니다. 6절에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9절에도 다시 한 번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특히 9절 여호와 앞에는 “파님 야훼”라는 히브리어 표현으로, 헬라어로는 코람데오 하나님 잎에서와 같은 표현이 됩니다. 파님은 얼굴,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즉 하나님이 보시는 가운데 이 일곱을 목매어 달므로 우리들의 억울함을 풀겠나이다. 하는 표현입니다. 이 여호와 앞, 여호와의 얼굴 앞이란 표현 파님 야훼는 철저히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을 인정할 때에만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브온 족속이 비록 속이는 방법으로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으며 그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휴지에 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어느 순간부터인가 믿고 비록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주의 전에 드나들다 보면, 안 믿는 사람이 주의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신앙이 들어오게 되는 것, 이게 신비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게 기타를 가르쳐준 친구 신승철이란 친구 제가 교회에 예쁜 여자애들 있다고 꼬셔서 데려다 놓았는데 어느 순간엔가 그에게 신앙이 들어가더라구요. 몇 년 후에 새벽기도 한다고 저한테 전화왔을 때 얼마나 마음이 기쁘던지요..이게 신앙의 신비함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전하는 일입니다. 마음을 움직이시고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를 보내신다는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편견없이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또한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외에 누구를 의지하고 살고 계십니까? 오늘도 신실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주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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