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11.19 | 창세기 49장 1-7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49장 1-7절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새벽 묵상
야곱은 늙어서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육신의 눈이 어두웠지만, 그러나 그의 영안은 밝아서,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할 때, 손을 어긋맞겨 얹고 하나님의 뜻대로 정확하게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제 열 두 아들에 대한 축복을 하게 됩니다.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축복은 단순한 복을 기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언적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후일에”란 말은 야곱의 아들들의 생애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에서부터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질 때까지의 전시대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먼저 장자 ‘르우벤’에 대한 축복을 언급하는데, 그가 능력과 권능을 부여받기는 했지만, 본문 4절에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의 능력과 특권이 끊어져서 탁월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르우벤은 장자로서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르우벤이 그의 서모 '빌하'와 간통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건으로 인해서 그에게 부여된 장자의 축복마저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처럼 순간적인 육신의 욕망을 자제하지 못한 것이 장자권의 박탈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악이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가는지를 교훈 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낙원과 영원한 생명을 빼앗겼듯이, 죄악은 우리에게서 모든 축복들을 강탈해 갑니다. 이러한 예는 성경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날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이스라엘의 사사 삼손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정욕에 사로잡혀서 들릴라에게 자신이 가진 힘의 비밀을 말함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그 역시 순간적인 정욕을 참지 못해서, 자신의 충신 우리아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서 다윗은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았고, 죽는 순간까지 그의 자녀들과 신복에게 괴로움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정욕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까지도 넘어뜨리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정치인들, 유명 예능인들이 이런 음행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불명예스럽게 뉴스에 이름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이런 음행의 유혹이 집요하고도 강력한 힘으로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성도들은 단호하게 이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유혹을 뿌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까?
그것은 아예 처음부터 피하는 겁니다. 마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피하여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성도는 삶의 주변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피해서 항상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도록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5절 이하에는 둘째인 '시므온'과 셋째인 '레위'에 대해서 질책을 합니다. 본문 6절 중간을 보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죽이고” 그랬습니다. 이 말의 배경은 시므온과 레위가 누이동생 디나가 성폭행 당한 원수를 갚기 위해서 세겜성의 모든 남자들을 살해하는 끔직한 범죄를 저지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 자신은 그와 같은 시므온과 레위의 악에 결코 동조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시므온과 레위가 잔인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인 행위에 대하여 무섭게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에 그 질책의 내용이 나옵니다. 마지막 부분에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고 했습니다.
후일에 실제로 이 말씀대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에 붙어서 살았고, 레위 지파는 모든 다른 지파의 땅에 흩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이스라엘 중에 흩어져 살았다는 점에서는 같은 운명이었지만, 그들이 흩어져 살게 된 성격은 달랐습니다. 즉 시므온 지파는 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에 흩어져 살았지만,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하나님께 대한 제사 직무를 담당함으로 이스라엘 내에 흩어지게 된 겁니다. 즉 레위에 대한 야곱의 저주가 도리어 축복으로 바뀐 겁니다.
그러면 레위에 대한 저주가 축복으로 바뀐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보인 충성과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즉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 당시 하나님의 편에 서서 범죄자들을 멸절시킴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아,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은혜를 입게 된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 행하여 징벌을 받더라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바로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리셨던 저주를 거두시고 축복을 내리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게 될 때, 즉각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헌신하십시오. 그리하면 죄로 임한 고통이 도리어 축복으로 바뀌어지는 은총을 경험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르우벤도 그렇고 시므온과 레위가 실패한 이유가 뭡니까? 르우벤은 4절의 “물의 끓음” 같았기 때문 입니다. 누가 한 마디 하면 부르르 물이 끓는 것같이 화를 내다가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6절을 보면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라” 고 했습니다.
성질 나면 앞에 보이는 것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어찌될까 뒷일은 생각도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의 끓음 같은 그런 기질을 가지신 분은 좀 이제 유의하셔서 중심을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팬데믹으로 모두 스트레스 받고 예민해져 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앞뒤 가리지 않고 분을 내고 막말 하는 것 주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