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6.24 | 사도행전 3장 1-10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3장 1-10절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에서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놀라는 사람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하루에 세 번씩, 3시, 6시, 9시에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곤 했는데, 베드로와 요한도 이들의 전통을 따라 정기적인 기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 9시는 지금의 오후 3시로, 기도시간으로 하루의 마지막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이 제자들은 이렇게 하루에 세 번씩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본문 2절에 보면 나면서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혼자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을 사람들이 매일 들어서 성전문 앞에 두었습니다. 이렇게 여기에 데려다 주는 이유는 한 가지,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람도 습관처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처럼 습관적으로 성전에 나오기는 하는데, 이 사람은 성전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성전 문 앞에서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성전은 자신의 삶의 필요만을 채워주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똑같이 성전을 배경으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사건인데, 한 종류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러 가고, 한종류의 사람은 사람들에게 구걸하러 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원하여 걸어갔고, 이 환자는 사람들에게 들려서 갔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환자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구걸을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그리 중요한 분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에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의 돈 주머니였습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돈이 이 환자에게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구걸하는 그 환자를 향해 베드로와 요한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 몇개 던져 주고 갔지, 이렇게 “우리를 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난생처름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보라” 고 말하니까 “야 뭐 굉장한 것을 주려는가 보다”고 기대감을 가지고 쳐다보았습니다.
이 때 본문 6-10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말합니다. 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7절에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절에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9절에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절에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기도하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놀라는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첫째로 모든 사람은 무엇을 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기도라 하고 사람에게 구하는 것을 구걸이라고 말하는 차이 뿐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필요 없는 것이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다 원하고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자기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어딘가로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가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나갈 뿐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나가기를 원하십니까? 아니, 구걸하기 원합니까? 기도하기 원하십니까? 사람들에게 구차한 손을 내밀기 전에 하나님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결코 구걸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 기도하는 사람이 해결 받지 못해서서 또 다시 사람에게 구걸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할 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셔서 다시 사람에게 나갈 필요가 없게 하십니다. 그런데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에게 구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해결됩니다.
두번째로 결국 기도하는 자가 구걸하는 자의 필요를 채워줬다는 겁니다. 구걸하는 사람은 다만 자기의 그날 필요를 채울 뿐이고, 내일이면 다시 나와서 구걸해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이 환자의 근본적인 문제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했습니다. 구걸하던 사람의 인생을 이젠 자기 손으로 벌어먹고 사는 인생으로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육신만 고쳐진 것이 아니라 사람도 바뀌어 졌습니다. 구걸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본문 8절에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구걸하던 입술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술로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기도를 통해 아무리 큰 일을 이룬다 해도, 한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기 구걸하던 환자를 보십시오. 그는 날마다 성전 문앞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를 보았지만, 그에게 동전 몇 개 던져 주는 것으로 끝났지, 그의 영혼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도 보면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처럼 예수 믿고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원의 은혜를 기뻐하며 감격해 하지만 바로 문앞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구걸하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 데리고 가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인생의 방랑자들을 하나님께 데리고 나갈 사람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 기도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을 주기시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기도할 때 예수님도 일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2천년 전 제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기도를 역시 들으시고 역사 하십니다. 믿고 기도하는 사람은 날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겁니다.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 있는 교회 되려면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가 기도하는 이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에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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