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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3.06.10 | 예레미아애가 3장 1-18절 | 구진모 목사




예레미아애가 3장 1-18절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새벽 묵상


예레미야애가가 5장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3장만 빼고 다른 장은 22절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3장은 3배인 66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프게 매로 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매가 분노의 매가 아니라 사랑의 매 인 겁니다. .



지금 여러분 가운데 “나는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 있습니까? 그 매를 사랑의 매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유전공학이 눈부신 발전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 때 인간복제 기술이 개발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인간이 신이 할 일까지 하게 되었다는 경고성의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사람의 게놈 지도를 완성해서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고, 수명을 연장시키게 되었다고 놀라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년동안 우리는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공포에 떨고 있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과학이 발전했는데, 그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공포에 떨어야 하나라는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펜데믹은 인간이 절제할줄 모르고, 인간의 한계를 넘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매를 드셨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매를 맞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우리가 지나쳤습니다. 우리가 과학으로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3절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 자주 나를 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또 여기에 묘사된 고난 가운데 가장 큰 고난은 8절 말씀입니다.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그 기도를 물리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도를 받지 않으셨다고 해서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애가의 끝장인 5장이 바로 예레미야의 기도 장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물리치신다고 생각이 들수록 더 열심히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오늘10절에서 12절까지를 보면 여러 짐승들과 물건들이 소개됩니다. 10절에 곰, 사자가 소개되고 있고, 11절에는 길이, 12절에는 활, 화살, 화살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전에는 다 축복을 말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다윗이 소년의 때에 사울 왕 앞에 나가서 “내가 저 블레셋 사람(골리앗)과 싸우겠습니다” 하니까 사울 왕이 “너는 소년이고 골리앗은 용사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때 다윗이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의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 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낼 겁니다”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다윗을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찢으려고 곰과 사자 같이 엎드려 기다리신다는 겁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길을 잘못 들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전에는 나의 길을 인도해 주시던 분인데 이제는 잘못된 길로 가게 하신다는 겁니다. 



시편 127:5절을 보면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화살통의 화살을 꺼내 나를 과녁삼아 내 허리를 맞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변하면 원수가 됩니다. 깊이 사랑하던 사람일수록 변하면 더 무서운 원수가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내용의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노의 회초리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회초리는 곧 사랑의 회초리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화살통의 화살을 꺼내 나를 과녁 삼아서 나를 아주 죽이려고 했다면 심장을 쏘아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허리를 맞춘다는 것은,  “네가 지은 죄가 이와 같이 크다” 며 깨닫게 하기 위한 화살입니다. 곧 살리기 위한 화살입니다. 



성경에서 예레미야애가서와 분위기가 비슷한 성경을 찾으라면 누구나 쉽게 욥기서를 생각할 겁니다. 욥도 “하나님이 나를 과녁으로 삼으셔서 활을 쏘셨도다”고 탄식을 합니다. 욥기 7:20절 중간부터 보면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의 화살을 맞고 나서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욥기 42:3절에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도다”고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나는 지금 하나님의 과녁이 되어서 하나님이 쏘시는 화살을 맞고 있


다”고 느끼는 분이 있습니까?



그 화살은 나를  죽이기 위한 화살이 아니고 살리기 위한 화살, 깨닫게 하기 위한 화


살인 것을 믿고 빨리 깨달으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를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돌이켜 이전과 같이 나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아니 이전보다 나를 더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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