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별 주관 새벽예배

새벽예배 2022.10.01 | 창세기 30장 1-13장 | 구진모 목사



창세기 30장 1-13장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9.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10.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 레아와 라헬이 자녀 낳기 경쟁을 벌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라헬이 그의 여종 빌하를 통해서 두 아들을 얻습니다. 단과 납달리 입니다. 그러자 레아도 자신의 여종 실바를 통해 갓과 아셀을 얻습니다. 이렇게 레아와 라헬은 계속해서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경쟁을 하면서 같은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창세기 29:17에 보면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그랬습니다. 한 마디로 언니 레아는 인물도 부족하고, 게다가 시력도 좋지 못한, 그래서 시집도 못 갈 여인인데  아버지 라반이 꾀를 부려서 억지로 시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래서 눈물과 한숨과 근심 걱정으로 일생을 보낸 여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동생 라헬은 인물도 예쁘고, 무엇하나 흠잡을 데 없는 여인으로, 남편의 사랑을 흠뻑 받고 사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레아는 동생 라헬보다 모든 면에서 불리하고 도저히 삶의 기쁨이 없는 여인일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 있는 레아에게 더 큰 축복을 주셨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레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축복을 얼마나 받았습니까?



레아는 자식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실 집안에서도 부모에게 레아는 걱정거리였을 겁니다. “시집이나 갈 수 있을까? 그런데 마침 야곱을 속여서 레아를 시집보냈던 겁니다. 그런데 시집을 갔는데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를 못했습니다. 남편인 야곱이 동생 라헬만 사랑하고 자기에게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니 레아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들을 넷씩이나 낳아도 남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들 넷을 낳고, 태도 끊겨서 더 이상 아이도 낳을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하나님만 찬양하며 살기로 결단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레아를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 자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사실 레아가 낳은 자식은 루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외에 또 나중에 잇사갈과 스블론 두 아들을 더 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깊이 받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받았습니다.


아리따운 용모는 없었지만 훌륭한 자녀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훨씬 큰 선물을 받은 겁니다.



보십시오. 레아의 아들들 중에 레위는 제사장 직분을 맡은 축복을 받았고, 넷째 아들 유다는 그의 후손 중에 다윗 왕이 나왔고, 그의 혈통에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라헬과 레아를 보면서 무엇을 알게 됩니까? 누가 진정한 승자입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과 하나님의 뜻과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가 고백 한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 은혜를 주시기 위해 육적 결핍을 주시고, 영원한 것을 주시기 위해 유한한 것을 빼앗아 가시며, 우리를 겸손케 하기 위해 더 큰 그릇을 만들고,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 부족하게 하시고 어려움을 주십니다” 참으로 깊이 있는 고백의 글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라헬과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레아의 삶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고, 행복으로 착각하며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그 용모가, 빈부가, 귀천이 아니라,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과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들을 들어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오셔서 예배드리는 여러분 가운데 혹시 내 모든 조건이 불리하고, 나이가 많고, 육신이 약하다고, 부요하지 못하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신앙만 있으면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레아와 같이 충만하게 받을 줄로 믿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삶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사울 왕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생명을 받쳐서 일했습니다.



찬송가 작가로 유명한 F. J. crosby는 어려서 눈을 다쳐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우니 마음도 어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점자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이 베다니에 들르신 사건을 읽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매우 비통해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그의 무덤으로 가셔서 무덤 문을 열게 하시고는,  요한복음 11:43절에 보면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십니다.  이미 죽은지 4일이나 되었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에 나사로는 놀랍게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때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동생이 죽은 후 너무 슬퍼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데, 누군가가 달려와서 예수님이 부르신다고 하자 마리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과 용기가 생겼는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크로스비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용솟음 치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그렇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시지 않는가?”


그래서 그는 용기를 얻어 찬송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531장입니다.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고달파 지친 자 쉬라시네 쉬라시네 쉬라시네”


“주님의 소리를 들어보라 들어보라 들어보라” 


(후렴)”지금오라 지금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



258장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그 외에도 은혜로운 찬송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편과 환경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레아와 같이 부족한 모습으로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를 들어 모든 원수까지도 부끄럽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