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겜에 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새벽예배 2022.10.12 | 창세기 33장 11-20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33장 11-20절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대중가요에 은혜 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어제, 오늘 이 새벽 본문을 묵상하다가 야곱이 왜 세겜에 갔을까 생각하면서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1983년에 홍수철 씨가 부른 가요를 발견하게 되어 유투브로 찾아서 그 노래를 들어봤는데 웬걸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가사를 여러분과 한번 나눠보고 싶습니다. 노래 제목은 “돈 때문에” 인데요 가사가 이렇습니다.

돈 때문에 속상하고 돈 때문에 기분 좋고 돈이란 무엇 이길래

사람을 울리나 돈 때문에 출세하고 돈 때문에 고생하고 돈이란 무엇 이길래 사람을 유혹하나 사랑도 의리도 돈에 얽매어 한평생 짝사랑 아~ 꿈을 찾아 헤맬 때 너와 내가 정녕 멀어져가니 오 오 안타까운 사연 말 못할 사연 그래도 돈에 빠지지 말자

돈 때문에 약해지고 돈 때문에 강해지고 돈이란 무엇 이길래

마음이 흔들리나 돈 때문에 좋아하고 돈 때문에 미워하고 돈이란

무엇 이길래 마음이 변하나 사랑도 의리도 돈에 얽매어 한평생

짝사랑 아~ 꿈을 찾아 헤맬 때 너와 내가 정녕 멀어져가니

오 오 안타까운 사연 말 못할 사연 그래도 돈에 빠지지 말자 그래도 돈에 빠지지 말자. 여러분 아멘입니까?

웬만한 찬양보다도 이 노래가 더 찔림을 주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돈에 약한 존재인지를 아주 직설적으로 적나라하게 밝히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웨슬리 목사님은 돈에 대해서 열심히 벌어라, 열심히 저축하라. 제일 중요한 것은 열심히 나누어 주라 하고 교훈의 말씀을 남기셨는데 우리 인간이 모두 다 돈 때문에 흔들리는 존재임을 인정하시고, 돈을 잘 관리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참 멋있게 돈 벌어 잘 사용하는 가치 있게 사용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우리는 야곱과 에서의 극적인 상봉의 현장을 묵상했습니다. 대 복수극이 벌어질 상황이었는데 이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얍복강가에 먼저 찾아오셔서 야곱과 씨름하시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하나님 그로 인해 먼지투성이에 상거지의 모습이 되어 일곱 번 완전히 엎드려 절하면서 형 에서와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되었던 야곱

자 이토록 감동적인 경험을 했다면 사실 야곱은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며칠 몇날을 감사의 제사를 드렸을 것 같은데,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런 야곱의 감사의 예배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좀 특이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2절 보십쇼.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이렇게 제안하는 형 에서에게 야곱이 거짓말을 합니다. 13절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아주 그럴싸한 핑계를 댑니다. 혹시 야곱이 아직도 에서를 무서워해서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14절까지 보십쇼.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이가리이다” 이 14절을 눈여겨보시면서 17절과 18절을 보시면 야곱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정말 야곱은 육신도 마음도 지쳐서 그리고 가축을 위해 숙곳에 머무르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18절 결국 어디로 갔습니까?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잘 보십쇼. 야곱은 14절 끝에서 세일로 가서 형 에서에게로 나아간다고 해 놓고 결과는 어디로 갔습니까? 세겜 성읍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사실 야곱은 처음부터 형 에서가 있는 세일로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두 군데 중에 하나로 가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 가나안 땅에 헤브론으로 가거나 아니면 길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난 곳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환상을 보고 깨어 일어나 돌베게로 기둥을 삼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곳 하나님을 처음 만난 곳 하나님의 집 벧엘로 갔어야 했습니다. 부모가 계신 고향으로 가거나 내 신앙의 출발지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겜 성읍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시 13절을 보면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13절 다시 보십쇼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야곱은 지금 에서에게 당장 에서를 따라갈 수 없는 핑계를 대면서 가축 양 소 이야기를 특별히 중요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세겜 성읍에 간 이유입니다. 야곱의 마음은 그저 아직도 눈에 보이는 재산 즉, 자기의 가축 즉 자기의 소유에 마음과 관심이 지나치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대한 경험 후에 가족들 앞에 나아가 어려움을 대표로 당하리라 하는 리더의 마음도 있었고 다 좋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자신의 소유에 대해서까지 완전히 변화되기는 어려웠나 봅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서 자기의 재산을 나눠주면서 남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할 정도까지의 물질에 대한 소유에 대한 초월의 마음까지는 갈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참 하나님과 만난 사람은 가진 소유에 대하여 연연하는 마음 그 집착까지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물질에 초연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야곱이 가진 재물, 그 소유가 어느 정도 있었을까요? 야곱은 형의 보복이 무서워서 자기가 가진 재산을 네 때로 나누어서 마지막 부분을 남기고 세 때를 차례로 형 에서에게 보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한 번에 다 보내면 감동이 덜할 까봐 선물 1, 선물 2, 선물 3으로 나누어서 감동에 감동에 더 큰 감동을 받으시라고 소유를 잔뜩 먼저 보냈습니다. 창세기 32장 13절부터 15절에 보면 친절하게도 보낸 가축들의 종류와 숫자까지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면 암염소 200, 숫염소 20, 암양 200, 숫양 20, 젖 나는 낙타 30과 그 새끼 암소가 40, 황소 10, 암나귀가 20, 나귀 새끼가 10마리였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그냥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다시 살펴보니 상당히 많은 양의 가축을 형 에서에게 보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 야곱이 에서에게 보낸 가축들의 오늘날의 시세로 따져보니 총 50만불 정도 된다고 통계를 내셨습니다. 놀래시지도 않네요. 50만불 정도는 나도 보낼 수 있다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 하시는 표정이십니다. 여하튼 자기의 생명값으로 50만 불을 보내면서 야곱은 분명히 가축 전부 다 보낼 수는 없고 어느 정도는 자기와 많은 아내와 아들들을 위해서 남겨 두지 않았을까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거의 반반해서 보내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보게 되면 야곱은 지금 가진 재산의 절반을 쓴 상황입니다. 에서가 그 예물들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야곱이 다시 권함으로 결국 에서는 받게 되었는데 아마도 야곱은 마음에 좀 아깝지 않았을까요? 정신 차리고 나서 잘 화해가 되고 나서 으메 아까운 것, 좀 덜 보내도 될걸 하는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이 헤브론도 아니고 벧엘도 아니고 세일도 아닌 세겜 성읍으로 간 이유를 좀 더 분명하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형 에서에게 너무 많은 예물을 드리고서 재산이 크게 줄어들었다 생각한 야곱은 부족한 재산을 보충할 생각으로 일명 돈을 좀 더 벌 생각으로 세겜 성읍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입니다. 세겜의 성읍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성을 세우고 즉 사람이 많고 각종 물건을 팔고 사는 상권이 발달된 도시였음을 예상하게 됩니다. 만약에 야곱이 세겜 성읍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행동 즉 하나님을 만난 벧엘로 돌아갔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 허허벌판 광야에서 야곱이 무슨 돈을 벌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다고 세일에 가면 좋았을까요? 형 에서에게 가면 역시 아무리 화해했다고 해도 다시 재산을 불릴 방법을 형 눈치를 보면서 쉽게 찾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 처음 시작할 때 홍수철씨의 돈 때문에 라는 가요 가사를 읽어드린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인간이 얼마나 돈에 약한 존재인지..

여러분 카톨릭의 부패, 돈 때문에 면죄부를 파는 세속화된 카톨릭을 개혁하고자 했던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쌈지(돈주머니)가 회개하기 전까지는 회개가 아니다”

이제 이렇게 돈 때문에 세겜 성읍으로 간 야곱일행이 무슨 일을 했는지 보십쇼. 19절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여러분 야곱이 지금 세겜 성읍으로 간 것도 문제인데 거기서 밭을 샀다. 장막을 친 밭을 샀다는 것은 거기서 아예 정착한다는 의미입니다. 17절에 숙곳에 이르러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짓는 것은 갈대나 풀잎으로 엮어 만든 임시 처소인데 반해 여기 이 19절에 장막을 친 밭을 샀다는 것은 임시가 아니라 아예 여기서 살겠다. 눌러 앉겠다. 이 땅이 바로 내 땅이다. 그런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가 되는 세겜 성읍으로 간 것에 이어 두 번째 문제 돈 때문에 안주하는 곳을 정하는 야곱, 하나님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야곱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다고 하셨는데 야곱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내가 좋은 세겜 성읍에 정착하는 엉뚱한 일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십쇼.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교훈 2. 돈 때문에 이 땅에 정착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땅은 잠시 머무를 곳이지 완전히 정착할 곳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부르다가..찬송가 가사처럼 이 땅은 정착할 곳이 아니라 잠시 살면서 그저 찬송 부를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이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은 무너진다. 즉 우리가 영원할 줄로 착각하는 모든 보이는 것들은 곧 무너지는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무너지고 말 유한한 곳 말고 손으로 지은 곳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투자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에 가시면서 하관식에 참석하시면서 바로 이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 머물 땅은 그저 반평 남짓 밖에는 안 된다는 사실. 무너질 장막이 있는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집에 투자하는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20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이 과연 온 마음으로 드리는 제단인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20절에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쌓은 제단의 이름 여러분에게 익숙합니까? 익숙하지 않습니까? 익숙하지 않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문가 부족한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왜 부족한가? 엘엘로헤이스라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름이 좋기는 한대 부족하게 겨우 쌓고 드린 제단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이유는 앞에 19절 끝에 “밭을 백 크시타에 샀다”는 표현에 나와 있습니다. 크시타는 은전 하나의 단위인데 양 한 마리를 사는 정도의 금액입니다. 백 크시타니까 양 백 마리 정도 달러로 하면 2만불 정도 된다고 할까요? 아니 2만 불에 땅 사서 제사드리는게 뭐가 문제인가? 앞에 형 에서에게 자기 해치지 말라고 예물 보낼 때는 얼마를 보냈습니까? 50만불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 제사드리라고 했더니 장소도 엉뚱하게 세겜 성읍, 땅도 그저 땅 싸게 사서 그냥 적당하게 제단 쌓아 드렸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는 50만불을 쓰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2만불도 아까운 억지로 겨우 사서 드린 제단 엘엘로헤이스라엘. 이게 혹시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는 억만금을 써도 아깝지 않아 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너무 째째해지는 야곱의 모습이 혹시 저와 여러분의 모습 아닙니까? 날 위해 전부를 주신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사랑을 정말 나는 알고 있는 것인지 나의 삶 전체는 드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구원의 감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째재하지 않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제단을 쌓아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