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3.29 | 사무엘상 10장 1-15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30장 1-15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니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렙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 하니라
새벽 묵상
1800년대 초에 세관에서 일하던 30대의 한 청년이 무능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실직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면서 자기는 인생의 실패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소피아라는 이름의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에요 여보.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그토록 원하셨던 그 일,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하셔야 할 절호의 기회네요 당신 파이팅!"
그는 아내의 격려와 기도에 힘입어 열심히 작품을 쓰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그 결과 10년간의 노력 끝에 소설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소설이 바로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걸작, Scarlet Letter 주홍글씨였습니다. 이 소설의 저자가 바로 세관에서 실직한 사람 “나다니엘 호손”입니다.
존 프리벧은 "인간의 극한 상황은 곧 하나님의 기회다. (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라고 말했고, 위기는 위대한 기회라라고 말하는 분도 있는데 위기다 해서 낙담하지 말고, 가장 위대하신 분이 주시는 기회를 붙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셨는데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하게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설상가상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요? 설상, 눈 위에 가상, 서리가 또 내린다. 하는 말로 계속해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비슷한 표현으로 전호후랑, 즉 앞에는 호랑이가 있어서 뒤돌아 봤더니 늑대가 있더라. 엎친 데 덮친다는 우리 말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의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어제 우리는 다윗이 잔머리 써서 사울을 피해 적진 블레셋 가드로 피했다가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하게 될 때에 같이 전쟁해야 하는 위기가운데 하나님의 세심한 섭리하심으로 블레셋 다섯 방백들이 모여 다윗을 출전하지 못하게 막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결국 가드 왕 아기스의 입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은 동족과 싸우지 않고 삼일 만에 원래 있던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 돌아오는 삼일 사이에 아말렉이 시글락을 쳐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 보십시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겨우 동족과의 전쟁을 피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온 다윗과 그 일행 앞에 펼쳐진 상황은 실로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겨우 동족상잔의 비극을 피했는데 이제 괜찮겠거니 했는데 3절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그야말로 설상가상, 전호후랑의 상태였습니다. 이 상태가 얼마나 괴로운 상황이었는지 4절 보십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얼마나 울었으면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겠습니까? 아마 요즘 이런 상황을 직면했으면 우리가 살 이유가 없다. 다같이 죽자 하는 사람이 여러 명 나왔을 것입니다. 아무리 용기 있는 다윗도 지금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경우로, 다윗에게도 심각한 절망의 상황이었음이 5절에 드러납니다. 다윗의 두 아내 아히노암과 몇일 전에 묵상한 최고의 여인 아비가일도 또한 사로잡힌 자 중에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 상황이 심각했는지 6절에 보면 그동안 다윗을 따르는 자들이 하지 않았던 가장 충격적인 모습이 드러납니다. 6절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따르는 자들 앞에서 처음 겪는 너무 큰 위기였습니다. 아무리 다윗을 따르는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이들이었다 해도 자기 자식이 잡혀간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이성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슬퍼서 라는 표현의 슬퍼서는 히브리어로 “마라”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마라가 어디 나옵니까? 두 군데 기억하시죠? 모세가 광야에서 물을 만났는데 마라의 쓴물, 쓰다 라는 뜻이 있구요. 룻과 나오미에서 나를 나오미라고 하지 말고 마라라고 하라. 즉 내 인생은 아들들도 죽고 남편도 죽고 나는 쓰디쓴 인생이다 절망의 인생이다. 그 때 쓴 단어가 마라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을 따르는 이들은 마치 가족이 다 죽어버렸다고 낙담하고 절망하여 느끼는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장 극심한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고통스러워하는 백성들을 보는 다윗의 마음 또한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6절 중간에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다급하였으나는 히브리어로 “야차르” 답답하다 곤란하다 숨이 막히다. 창세기 32장에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썼던 표현도 바로 이 표현입니다. 야차르. 그런데 이 최악의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하였는가?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6절 제일 끝 문장, 큰 반전의 표현이 우리에게 중요한 첫 번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6절 끝 문장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잔머리를 써서 블레셋 가드로 가기 전에 뜨거웠던 하나님과의 관계로, 100% 신뢰하고 의지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다윗이 다시 회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다윗 자신의 하나님을 다시 뜨겁게 만나면서 용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1. 첫 번째로 가장 위태로운 절망의 상황에서 나의 하나님을 찾는 다윗의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어려운 상황에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큰 절망이 올 때는 하나님이고 뭐고 그냥 다 포기, 난 파산, 이제 완전 끝이야 하고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롯유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팔아버리고 자기가 잘못한 것을 깨달았을 때 가롯유다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팔아먹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미웠던지 자기 자신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아예 차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은 30에 주님 팔아버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회개할 기회를 없애버린 것 스스로 생명을 멸해버린 것, 오직 하나님의 권한인 생명을 자기가 빼앗아버린 것 이게 가장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주님께서 너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고 하셨겠습니까?
구체적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묻고자 7절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제사장이 입는 옷 에봇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가려냅니다. 그래서 에봇으로 8절 여호와께 묻습니다. 하나님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을 수 있습니까?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좀 더 구체적으로 물으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응답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히스기야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찌합니까? 하나님은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시고 아하스의 일영표, 즉 해시계가 십도가 물러가는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히스기야의 삶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죽음까지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시고 나의 하나님을 찾으시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구체적인 응답을 체험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 뜨겁게 만나시길 바랍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더불어 용기를 얻고 확실한 하나님의 응답까지 얻으면서 9절 이후에 아말렉을 추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말렉을 추격하면서 아무리 급하고 간절해도, 마음 따뜻한 지도자의 성품, 리더의 특징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9절과 10절 보십쇼.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10절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여러분 앞에 블레셋 군인 전체 집결지 아벡에서부터 시글락까지가 사흘길이었습니다. 완전 군장한 이들이 사흘길을 무기와 식량을 이끌고 정신없이 왔는데 시글락에서 가족이 납치된 충격적인 상황을 보고 아무리 시급하고 시간을 다투는 상황일지라도 연이어 아말렉을 추격한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200명의 도태되는 이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다윗이 리더가 아니라 보스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지쳐있는 몇 명을 처단해서라도 강행군으로 밀고 갔을 것입니다. 쉴 시간이 어디 있냐고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200여명의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했습니다. 그들을 브솔 시내에서 쉬게 하고 나머지 400명을 이끌고 아말렉을 추격하는데 총력을 다합니다. 여러분 이게 리더입니다. 또한 11절에 아말렉을 추격하는 길에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하는 행동을 보십쇼.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12절에는 이 사람에게 온갖 음식을 주고 먹입니다. 여러분 이 애굽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일단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보는 것을 놓치지 않는 따뜻한 마음. 이 애굽 사람이 다 회복된 후에 13절에 그가 누군지를 물으니 나는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데 버림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보내서라도 내 길을 도와주시는구나. 이 버려진 애굽 사람 하나를 돌봄으로 그의 인도에 따라서 아말렉을 추격하여 결국 모든 가족들을 되찾고 전리품까지 풍족히 수거하게 됩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두 번째 교훈이 여기서 발견되는데 2. 다윗의 따뜻한 마음과 긍휼한 마음을 본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진짜 리더는 이래야 합니다. 보스는 자신을 위해 부하를 희생하지만 리더는 부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다. 어려움을 당한 이를 돌봐주었더니 그로 인해 결정적인 추격의 길을 찾게 되었던 리더 다윗, 마태복음 25장에 양과 염소의 비유를 기억하십니까?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오른편에 있는 이들이 누구였습니까? 병든 이들을 돌아보고 주린 자를 먹이고 입힌 사랑을 베푼 자들, 마음이 따뜻한 자들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분들은 다윗처럼 따뜻한 긍휼의 마음을 놓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내일 본문에 나오지만 드디어 아말렉이 잡아간 가족들을 되찾고 모든 전리품을 얻으면서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3. 동족과 싸우지 않도록 블레셋 방백들이 우리의 출전을 막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큰 은혜였구나. 만약에 하나님이 그 길을 막지 않았다면 동족과 싸워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늦게 시글락에 도착했을 것이고 그러면 잡혀간 가족들을 이렇게 다시 되찾게 될 수 없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다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다 미리 내다보시고 돌아보시고 이끌어 주신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섭리하심, 여러분 우리 인생 전체가 바로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섭리하심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천재일우, 절호의 기회, 돌아보니 설상가상이 아니라 은혜와 섭리의 하나님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붙들고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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