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9.08 | 창세기 21장 1-7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21장 1-7절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웃게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얼마나 웃고 사셨습니까? 혹시 웃음을 잃고 사시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주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오셔서 잃어 버린 웃음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처음부터 웃음을 주셨던 것은 아닙니다. 먼저 그들은 웃음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큰 민족을 이루고 자손이 창대케 되리라”는 약속을 받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기까지 아들이 태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웃음이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웃다가도 아들 생각만 하면 웃음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웃음을 잃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 웃음을 잃어 버립니다. 열심히 살아도 열매가 없을 때 웃음을 잃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우리의 삶을 우울하게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를 웃게 하고야 마는 그런 은혜의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웃음을 잃은 아브라함에게 웃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웃음은 건강한 웃음이 아니라 비웃는 웃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다 지친 아브라함을 찾아 가셨습니다. 창세기 17:17에 보면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아브라함이 드디어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 웃음은 조소의 웃음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웃음이었습니다. 



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8:12절을 보면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라며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라 역시도 믿지 못하는 웃음입니다.  기가 막혀서 웃는 웃음입니다.  어의가 없어 웃는 웃음입니다.  비웃는 웃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런 비웃음으로 응답했던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앞으로 귀한 일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속으로 아브라함이나 사라처럼 조소해본 그런 경험은 없습니까?  “안돼 난 할 수 없어. 이건 아마 불가능 할꺼야” 속으로 이렇게 아브라함 처럼 비웃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마음속으로 조소하며 웃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진짜로 이루어질 말씀이다,  내 삶을 새롭게 할 말씀이다”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믿지 못하고 조소하는 아브라함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다. 이제 드디어 세 번째 단계의 아브라함의 웃음이 있습니다.  조소하는 웃음, 비웃는 웃음, 부정적인 웃음이 이제는 그야말로 행복한 웃음, 감사의 웃음, 기쁨의 웃음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이삭을 주셨습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은 기쁨에 겨워, 감격에 겨워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삭의 뜻이 무엇입니까?  .  ‘웃음’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 약속을 들었을 때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드디어 약속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이삭'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웃음을 주셨다. 내 슬픔을 웃음으로 바꾸어 주셨다. 내 부끄러움을 웃음으로 바꾸어 주셨다. 내 괴로움을 웃음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신앙고백인 겁니다. 



본문 6절에도 보면 사라도 웃었습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25년만에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기쁨이 넘쳐 흘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웃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웃음보를 터뜨려 주시는 분입니다. 도무지 웃지 못하고 도무지 즐거워 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고통 속에 찾아오셔서 기쁨으로 웃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시간에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과 함께 우리도 모든 종류의 기쁨과 웃음을 회복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던 아브라함과 사라, 그런데 그들의 웃음은 자기들만 웃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웃음을 전염시키고 있습니다.  



6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자가 다 함께 웃으리로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들만 웃지 않습니다.  이젠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하는 그런 기쁨의 근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남긴 묵상 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길을 걷고 있는데 말할 수 없이 비참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고, 술에 찌들려 있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 남자가 고개를 들어 테레사 수녀를 보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얼마만에 따뜻한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환하게 웃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진정한 웃음은 또 다른 사람을 웃게 하는 겁니다.  진정한 기쁨을 가진 성도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달하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 속에 들어가서 기쁨을 주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웃음의 전달자들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안에서 웃으시길 바랍니다.  기다리는 것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고 웃으시길 바랍니다.  무거운 짐 혼자 지고 괴로워 하지 마시고 주님이 대신 짐을 지어 주실 것을 믿고 주님께 맡기고 웃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해결되지 않는 모든 문제들을 바라보고 괴로워 하지 마시고 주님이 풀어주실 것을 믿고 소망중에 웃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어떤 일에든지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고, 슬픔 중에도, 고통 중에도, 답답한 중에도, 믿음으로 웃고 사는, 기쁨의 주인공들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