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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9.03 | 창세기 19장 1-11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19장 1-11절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새벽 묵상



오늘 말씀은 두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소돔성에 살고 있는 롯을 방문합니다. 그러자 롯이 반갑게 일어나 그 손님들을 맞이 합니다. 마치 그 모습이 18장에서 묵상한 아브라함에게 세 손님이 방문했을 때 아브라함이 그 손님들을 맞이한 것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아브라함은 손님들을 보자 “몸을 땅에 굽혀” 손님을 맞이했고, 롯은 1절 마지막 부분에 “땅에 엎드려 절하며”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곧 달려가서” 영접했다고 했는데, 롯은 그냥 “일어나” 영접했다고 했고, 또 아브라함은 '손님들, 괜찮으시다면 소인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고 조금 쉬었다 가시기 바랍니다. 물을 길어 올테니 발을 씻으시고, 나무 밑에서 조금만 쉬십시오. 떡을 가져 올테니 잡수시고 피곤을 푸신 다음에 길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롯도 본문 2절에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라고 아브라함 보다는 간단히 말합니다.  그리고 대접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새로 만든 풍성한 떡과 송아지를 잡아서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3절 중간에 보면 “무교병”을 대접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브라함이 머물고 가라고 했을 때는 '아, 그렇게 하지요'했었는데, 롯에게는 2절 끝 부분에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세우리라”며 사양을 했습니다.  



롯은 소돔성의 밤 거리는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고 했습니다.  롯이 집으로 들어가자고 간청을 하니까 그제서야 그들이 롯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큰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롯도 아브라함과 비슷하게 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살면서 보고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손님에 대한 모양은 어느정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보면 아브라함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눕기 전에' 했습니다. 옛날에는 일반적으로 해가 지면 곧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1절에 보면 “천사들이 저녁때에 소돔성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들어 온지 얼마 안되어서 외부 사람들이 성에 들어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곧 바로 사람들이 몰려 든 겁니다.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 와서는 '너의 집에 들어온 사람을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소돔성은 동성애자들이 공공연하게 활개를 치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6절 이하에 보면 롯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8절에 보면, 대신 내 두딸이 있는데, 두 딸을 내어 주겠다는 겁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롯이 그랬습니다. 그것은 롯도 소돔성에 사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소돔성의 죄악에 깊게 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지 않으면 물이 들고 맙니다. 힘들지만 결단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결단 안하면, 롯과 같이 된다고 경고해 주고 있는 겁니다.



창세기14:12에 보면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이라고 했습니다. “거주했다”는 말은 이곳이 내가 살 곳이다하고 아주 터를 정하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그들이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류하면서”라는 말은 임시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롯은 그 곳에서 정착하고 산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곳 사람들은 롯을 잠시 머물 나그네로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지만, 거슬리면 언제든지 배척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롯은 하나님도 놓쳐 버렸고, 소돔 사람들에게도 배척을 당한 겁니다. 한마디로 롯은 경건의 모양은 갖추고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은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겉은 아브라함을 닮았었지만,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했던 겁니다. 



세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고립형'입니다. 이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하면서 세상과 타협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엣세네파’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과 단절하고 깊은 광야로 들어가서 겨우 생명만 부지할 정도로 먹고 살면서 신앙생활만 힘쓴 사람들입니다(쿰란공동체).



두 번째는 '누룩형'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셨습니다.



세 번째는 '고민형'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도 즐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즐기지만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과 완전히 같아지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데' 고민을 하면서도 세상과 타협을 하면서 삽니다. 그러니 늘 마음이 편하지 못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도 누리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도 다 누리기를 바라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구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세상에서는 배척을 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나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살려고 하면 절대로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 다 갖지도 못하지만 다 가져도 허전하고 허무합니다. 채워지지를 않습니다. 또 세상에서도 배척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집중하면 만족하게 됩니다. 배척 당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결론은 롯은 하나님과 세상을 다 택했고, 아브라함은 영적인 부요, 한 가지만을 택했습니다. 결국 롯은 실패했고, 아브라함이 성공했다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하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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