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9.01 | 창세기 18장 1-15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18장 1-15절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새벽 묵상


오늘 18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1절부터 8절 사이를 보면 아브라함이 손님을 지극정성을 다해서 대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정오 때가 되었는데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나그네 세 사람이 자기 집 앞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정오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뜨거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낮잠 자는 시간입니다. 꼼짝하기도 싫은 시간이지요. 그 시간에 나그네를 본 아브라함은 달려가서 몸을 땅에 굽혀 영접하고 그 손님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게 됩니다.  



본문 2-4절 말씀입니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정중하게 초청해서 들어온 손님들의 발을 씻겨주고, 바로 가서 요리를 만들게 되는데 6절 이하에서 설명을 해줍니다.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했습니다.  



여기서 ‘고운 가루’란 좋은 재료를 말합니다. 가장 비싼 재료입니다. “세 스아”란 수십 명이 먹을 양식입니다. 풍성함을 의미하는 겁니다. 좋은 재료로 많은 떡을 만들었고,  또 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가장 맛있는 송아지 고기를 가지고 요리를 만듭니다. .



그리고 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고 했습니다. 모셔 서서 잡수시게 했다”는 것은 겸손한 섬김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서비스업을 하시는 분들은 반드시 이런 정신에 맞추어서 기업을 경영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아브라함이 손님을 접대하는 모습을 좀 보십시오.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자기가 먼저 뛰어 나가서 영접합니다. 보답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어떻게 하면 손님을 섬기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손님을 기쁘고 유익하게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그것만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는 겁니다. 



사실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내 앞에서 무릎꿇게 하고, 그가 가진 것을 왕창 뺏어서 내 것으로 하는데서 행복이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행복은 남을 먼저 기쁘게 할 때 오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시는지 모릅니다. 도울 수 있는 기회를 풍성하게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게으름과 이기심과 교만함과 부주의함으로 인하여 이런 행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다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결코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내 집에 손님이 찾아 올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천사같은 마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아브라함의 이 마음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열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추구해야 할 삶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그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고 했습니다. 사라는 자기 집에 온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을 하면서 궁금했을 겁니다. “저분들을 누구일까? 왜 오셨을까?” 궁금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 장막 문 뒤에서 엿듣고 있었던 겁니다. 



사실 여기에서도 세밀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손님들을 보내신 이유는 사라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그 약속에 대해 확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아들을 줄 때가 되었고, 그러려면 사라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계셨던 겁니다. 



궁금해서 장막 문 뒤에서 엿듣고 있을 때 그 손님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10절에 보면 “내년 이 말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라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12절입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그랬습니다. 



속으로 웃었습니다. 여러분, 사라의 마음을 이해하시겠어요? 사라는 아픈 곳을 찔렸습니다. 한평생 그렇게 낳고 싶었지만 애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이에 1년 후에 애를 낳는답니다. 내 남편이나 나나 다 이렇게 늙었는데 아이를 낳는다니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웃었습니다. 이 웃음은 기가 막혀 웃는 웃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14절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 말을 듣고서 사라는 그 손님들이 천사임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면서 말합니다. 15절에 “내가 웃지 아니 하였나이다” 자기 웃음의 이유를 여러 가지로 변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네가 무엇으로 변명을 한다 할지라도 네 웃음은 분명히 불신의 웃음이었다고 지적을 해 줍니다. 



사라가 왜 웃었을까요? 쉽게 말하면 자기가 하도 한심해서 웃은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와 남편을 바라보면 아이를 갖는다는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말 자체가 자기를 비참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웃은 겁니다.



여러분, 오늘 이 사라의 웃음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사라처럼 비웃으며 살 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높은 뜻을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만 바라보고, 처해 있는 환경만 바라봅니다. 그리고 낙심합니다. 또는 비웃습니다. “말도 안돼” 이런 불신앙적인 말들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여러분, 이제는 먼저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세요. 이 순서가 뒤바뀌면 안됩니다.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보니 하나님 말씀이 말 같지 않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또 나를 먼저 보니 내가 너무 한심한 겁니다. 그러다보니 낙심도 하고 실족도 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불신의 웃음을 웃는 사람들, 혹은 한심해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왜 웃고 있느냐?  왜 울고 있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함이 있느냐?” 



“나는 돈도 없구요 학벌도 없습니다. 인생? 비참합니다” 이렇게 한숨 쉬는 분들 있습니까? 다 하나님께 책망받을 말들입니다. 다 자기 자신을 쳐다봐서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이제는 먼저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고, 나를 보는 믿음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