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8.05 | 창세기 2장 18-25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2장 18-25절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새벽 묵상


어떤 분들은 우스개 소리로 말합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물에 약하답니다. 그래서 . 그 어떤 강한 남자라도 여자의 눈물에는 녹아지는 것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랍니다.



양반을 뼈대있는 집안이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로 보면 남자가 양반입니까? 여자가 양반입니까?


진짜 양반은 여자 분들입니다. 뼈대로 만든 뼈대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재료가 흙이지만, 여자의 재료는 뼈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부부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했습니다. 20절에도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그랬습니다. 그래서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부부를 만나게 하시고 가정을 허락하신 이유는 서로 돕는 배필이 되라는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부부관계가 이 돕는 배필이라는 사실을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돕는 배필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바라고 기대하는 관계로 살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들이 바로 이런 생각때문에 일어 납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항상 하나님의 원리인 돕는 배필로 살아갈 때 문제가 없는 겁니다.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께서 왜 남자의 갈빗대로 만드셨느냐는 이유를 말했는데, 그 이유는, 만일 여자를 아담의 머리뼈로 만드셨다면 여자가 모든 것을 다 생각하고 여자가 남자 머리위에 올라서 남자를 지배하려고 했을 거라는 겁니다. 반대로 아담의 발바닥 뼈로 만들었다면, 남자가 여자를 권위로 발로 짓밟듯이 했을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 갈비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성경에도 보면 여러곳에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돕는 배필이다라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돕는 배필이 아니라 바라는, 기대하는 배필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흔히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서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하면 이 남자가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 나에게 이 남자가 무엇을 줄 것인가?” 생각을 합니다.



또 남자는 “내가 이 여자와 결혼하면 내 인생이 얼마나 멋질 것인가” 그것부터 생각하니까, 결국은 결혼을 해서도 싸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부부 싸움할 때 남편이 뭐라고 말합니까? “야, 나 같은 남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여자는 입이 없습니까? “사돈 남말하고 있네. 당신같이 성격이 깐깐하고 반찬투정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나 하니까 당신하고 살지 다른 여자 같으면 당신하고 일년도 못살아” 이렇게 대꾸합니다.



여러분, 사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만약 내 남편 내 아내가 완전했다면 무엇 하려고 나 같은 사람하고 살고 결혼했겠습니까? 내 남편 내 아내가 완전했다면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선택했다는 것은 서로가 부족한 것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그래서 이 부족하고 연약한 것을 서로 보완해가면서 살라고, 돕는 배필로 살라고 우리에게 가정을 허락해 주신 겁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돕는다는 care 단어를 풀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C는 Challenger다.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더 발전해 가도록 도전을 주는 것이라는 겁니다. A는 Accept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온몸을 더럽혀 왔지만 너는 더러워서 안돼 하고 거절하지 않고 품에 그 대로 안아주는 그것이 곧 도와주는 겁니다. 우리는 더러운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셨습니다.  R은 Respect 입니다. 곧 돕는다는 것은 서로를 존경해준다는 겁니다. E는 Erase, 지우다라는 단어입니다. 지운다는 것은 지난날의 허물을 지운다는 겁니다. 



이것이 곧 돕는 겁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 도움이 없다면 행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서로 돕기 위한 만남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부가 행복하지 않다면 서로 돕는 관계가 되어져 있지 않아서 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가정을 주신 것은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허락하신 겁니다. 



흔히들 사랑은 로맨틱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감정적인 로맨틱한 사랑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감정적인 사랑은 다 변합니다. 더 좋은 것이 오면 더 좋은 것으로 기울어져 버리는 것이 소위 감정적인 로맨틱한 사랑입니다. 



부부의 참된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지적인 사랑으로 발전해야 하는 겁니다. 저는 결혼 주례를 할 때마다 신랑 신부에게 그렇게 당부합니다.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사랑은 세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해하는 것이요, 용서하는 것이요, 동참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줍니다. 



‘폰넬틱’이라는 미국의 가정법원 판사는 수천 쌍의 부부 이혼소송을 담당했던 판사입니다. 그는 부부관계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부생활에서 금메달을 받아야될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이다. 은메달을 받아야될 사람은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동메달을 받아야될 사람은 인내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흔히들 자기 아내에게, 자기 남편에게, 자기 아내이고 자기 남편이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늘 말하지만 기술입니다.



부부가 서로 말로 세워주고, 말로 격려해 주는, 이런 관계가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후, 그 여자를 아담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아담이 여자를 보고 뭐라고 합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부부가 서로 칭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돕고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바라는 배필이 아니고 서로 도와주는 배필이 될 때, 우리 가정이 화평해 질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부부관 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가정이 천국의 동산이 될 수 있도록 아름답게 가정을 가꾸고, 세우고, 살피고,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