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7.18 | 고린도후서 6장 14절 - 7장 01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후서 6장 14-20절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후서 7장 01절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새벽 묵상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정몽주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시조로 불충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악을 도모하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내가 비록 깨끗하고 성결한 삶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들과 짝하여 있느냐에 따라서 내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유유상종’이란 말을 합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비슷한 성격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모입니다. 옛날 사극을 보면 간신들과 짝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간신이 되고, 역적들과 어울리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역적모의에 가담하게 된 경우를 보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었는데,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믿지 않는 남편이, 믿지 않는 아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러므로 주위에 믿지 않는 친구들이 많다 보면 이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는데, 많은 경우에 그러다가 신앙인의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도, 교회 안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신실하게 하기도 하고, 아니면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어렵게 하는데 앞장 서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맹자의 집이 처음에는 공동묘지 근처였는데 어린 맹자가 종종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고는, 곡을 하거나 관을 땅에 묻는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겁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이곳이 아이를 키울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여서 이사를 갑니다.



이사를 간 곳이 시장 근처였습니다. 거기서도 맹자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팔며 흥정하는 흉내를 내면서 놉니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는 그곳도 아이를 키울 곳이 못된다고 판단하여 다시 이사를 합니다.



이번에는 서당 근처로 이사를 왔는데, 서당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그 흉내를 내면서 놉니다. 비로소 맹자의 어머니는 마음이 놓이고 그곳에서 정착을 했다는 겁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바르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가난한 살림에 세 번을 이사 했습니다. 무엇을 말해주는 겁니까?  인간은 주위의 환경과 사람들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겁니다.   



맹자가 웬만큼 장성하여 집을 떠나 타지방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가 어느날 돌아왔습니다. 이때 맹자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베를 짜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의 학문이 얼마나 진보하였나 묻습니다. "네 학문이 어느 정도 나아졌느냐?" 맹자는 대답합니다. "그대로입니다. 별로 진전이 없습니다. 그만둘까 봅니다."



그러자 맹자의 어머니는 칼로 짜고 있던 베를 끊어버립니다. 맹자는 영문을 몰라 떨면서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묻습니다.



어머니는 대답합니다. “네가 공부를 그만 두는 것은 내가 베를 끊는 것과 같다. 군자는 학문에 힘써 이름을 내고, 모르는 것은 물어 지식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에 나가서는 위험을 멀리하게 된다. 그런데 너는 지금 공부를 그만 두려고 하니, 앞으로는 심부름이나 하면서 생계를 걱정하게 될 것이다. 베를 짜서 생계를 꾸려 가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여자가 생업을 그만두거나 남자가 덕을 닦다가 타락하면 도둑이 되거나 남의 심부름꾼이 될 뿐이다.”



맹자는 어머니 말씀에 충격을 받고 분발하여 쉬지 않고 학문을 쌓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고사가 “단기지교(斷機之敎)”입니다, 즉 베를 끊으면서 준 가르침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믿음의 진보가 있으려면, 이를 위해서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성화된 삶을 살고자 하는 수고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본문 14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가나안 거민들과 어떠한 사귐도 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7장 2절 이하에 보면, “... 그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을 믿지 않는 마음으로 읽으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정이 없을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생각이 될만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까?  이런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 곳 가나안 사람들과 사이좋게 같이 살면서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은 우리 인간이 어떠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특별히 악한 것에 쉽게 물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 인구의 80% 이상이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요, 기독교국가라고 하는 미국에 사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들이 문화적으로는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만, 참 많은 부분에서 믿는 사람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일체의 접촉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소금이 아닌 세상의 소금이라는 겁니다. 


물건을 사고 나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더니, 옆에 계시던 분이 “물건을 판 사람이 고마워 해야지 왜 산 사람이 고맙다고 하느냐?”고 합니다. “이렇게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여기에 자리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이에요”라고 했더니, 이해를 하셨습니다.



교회 밖에서의 삶은 무가치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가치가 빛나는 장입니다. .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주일날 교회가는 모습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돌아와서의 삶을 잘 살라고 합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감동을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감동을 주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