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6.16 | 에스더 4장 1-17절 | 구진모 목사



에스더 4장 1-17절


  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5.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새벽 묵상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누어지게 되고,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망합니다. 이 당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등장한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에 많은 유다인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들 가운데 모르드게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에게는 또 친딸 같은 삼촌의 딸 에스더가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바벨론은 바사에 망하고, 다섯번째 왕인 아하수에로 왕에게 와스디 왕후가 있었는데, 왕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폐위되고, 이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물론 에스더는 자신이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 모르드개는 왕궁의 한 행정관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아하수에로 왕을 대신해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하만과 모르드개는 매우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하만이 모르드개가 유다인임을 알게되자, 모르드개는 물론 바사에 남아 있는 모든 유다인을 학살하고자 하는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모르드개는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걸치고, 재를 뒤집어 쓴 채로 성 안으로 들어가서 대성통곡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모르드개의 그러한 장면에서 에스더의 결단의 내용까지입니다. 드디어 모르드개가 당한 일이 왕후 에스더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궁전 내시를 시켜 왜 모르드개가 그렇게 괴로워 하는지 알아오게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유다인 학살 계획을 에스더에게 알리고, 에스더가 직접 왕께 나아가서 왕에게 자비를 구하고, 최선을 다하여 유다 민족을 살려 달라고 탄원하도록 내시에게 부탁합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에스더는 임금이 부르지 않는데, 왕에게 가는 자는, 남자든지 여자든지 모두 사형으로 다스리도록 되어 있는 법을 말하며, 현재 자기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드개에게 전합니다.



이런 에스더의 답변을 전해들은 모르드개는 매우 분개하여 에스더에게 다시 회신을 보내게 되는데, 그 내용이 본문 14절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는 겁니다. 



모르드개의 회신을 받은 에스더는 개인적으로 매우 심각한 결단을 하게 됩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수산궁에 살고 있는 전 유다인들에게 사흘동안 밤낮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금식을 하게 하고,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법을 어기고서라도 “죽으면 죽더라도” 왕께 나아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모르드게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는 몰랐다가, “이 때”라는 라는 말을 깨닫고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1940년 여름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했습니다 그러자 폴란드에 살고 있던 많은 유태인들이 인접한 나라 리투아니아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곳 역시 안전한 곳은 못되었습니다. 언제 독일군이 침공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리투아니아에 있는 각국 영사관에도 이미 철수 명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유태인들은 또 다시 다른 나라로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럴려면 입국을 허락하는 비자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자를 발급하는 각국 영사관들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고, 접촉이 가능한 곳은 일본 영사관 뿐이었습니다. 유태인들은 서둘러 일본 영사관으로 몰려 갔습니다. 그곳이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일본 영사관의 스기하라 부영사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본국 정부에 문의 전보를 쳤습니다. 본국에서는 곧바로 회신을 보냈습니다. 비자를 발급하지 말라는 지시였습니다. 독일과 우호관계에 있던 일본으로서는 독일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었던 겁니다.



영사관 담장 밖에서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고 있는 수 많은 유태인들을 바라보면서 스기하라 부영사는 다시 두 차례나 본국 정부에 허락을 요청하는 전보를 쳤습니다. 하지만 회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절대로 비자를 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밤을 고민하던 스기하라는 마침내 본국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저 많은 사람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겁니다.



영사관 문을 열고 유태인들을 들어오게 한 스기하라는 그날 이후 리투아니아에서 철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잠과 식사를 거른 채 비자를 발급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목숨을 구한 유태인 숫자는 무려 6천명이 넘었습니다. 스기하라는 얼마 후 독일군을 물리치고 새로 점령해 온 소련군에 포로로 붙잡혔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 풀려났습니다.



스기하라는 곧바로 일본 정부에 복직 신청을 냈지만 일본 정부는 그의 복직을 거부했습니다. 중요한 전시 상황에서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개인의 판단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공직에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스기하라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리투아니아에서는 수도 한복판의 큰 거리를 `스기하라 거리'라고 명명했으며, 이스라엘 정부는 자기 나라에 스기하라를 기념하는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인도적인 행동 덕분에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뉴욕에 모여 그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스기하라는 죽기 전에 아내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소”



우리는 똑 같이 가지고 있을 때 공평하다고 합니다. 적게 가졌으면 불공평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면서 똑같이 나누어 주면 그것이 공평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아이는 한개만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한개 먹으면 늘 배가 고픕니다. 두개는 먹어야 배가 부른 겁니다. 똑같이 가지는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필요한 만큼 갖는 것이 공평한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이 궁핍하다고 괴로워하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한 상대적인 생각 에서 나온 욕심입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그 어떤 삶에도 우리에게 감사할 이유와 풍성한 삶을 주셨습니다. 비록 내 욕심만큼 채워지지 않았어도 말입니다. 



조금전 아이들에게 빵나누어 준 것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의 필요보다 많이 가진 아이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두고두고 먹어야 합니까? 먹고 남은 건 버리나요? 가장 좋은 방법은 배가 채워지지 않은 아이에게 자기의 필요 이상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공평케 하는 방법은 바로 넘치도록 받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의 배고픈 고통을 외면하고, 나의 삶 만을 윤택케 하라고 주신 선물이 아니라, 공평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라고 맡기신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준비된 도구들임을 믿고, 마땅히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겁니다. “이 때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성숙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