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6.09 | 고린도전서 16장 1-12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전서 16장 1-12절


  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가닥 잡기가 쉽지 않은 본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울의 성숙한 섬김의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울의 섬김의 자세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섬김의 자세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 5절을 보십시오.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그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치밀한 삶의 계획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사역을 마무리 할 즈음에 이 서신을 써서 디모데 편에 전달하도록 한 겁니다. 바울은 이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서 치밀한 계획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비젼이 복음전도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감정만 가지고 흥분해서 전도한 것이 아니라, 1차, 2차, 3차, 그리고 가야할 장소까지 치밀하게 계획을 해서 전도를 했던 겁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고, 그 뜻을 우리가 받아 드리면, 그 뜻은 우리의 위대한 비전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삶의 비전이 있는 사람은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삶의 계획을 세우고,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윌리엄(William Carey)은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그도 자신을 향한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고 준비를 합니다. 벽에다가 세계지도를 걸어놓고 날마다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결국 그는 인도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인도로 가서 인도 대륙에 복음의 문을 활짝 열었던 겁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삶의 비전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그 비젼을 받고 무슨 계획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무슨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까? 



이제 6-7절을 보십시오.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바울의 표현을 보십시오.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그리고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원한다”는 표현입니다. 



여기 바울의 이런 표현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바울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추진해 나가는데는 단호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좀 의역해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러가는 동안 거기서 겨울을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겨울을 지내면 나는 다른 곳으로 갈 것 같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지만 주님이 허락하시면 너희와 함께 얼마동안 머물고 싶다”는 겁니다. 



저는 이러한 바울의 태도를 좋아합니다. 바울은 분명한 비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바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우선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다 생각이 되면 언제든지 자기의 계획을 바꿀 수 있는 융통성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누가 이런 여유있는 삶의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모든 권리를 맡기고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주권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의 허락 하에서만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이렇게 삶에 여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사역 초기부터 이런 유연성의 필요를 터득한 자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6-7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의 계획은 아시아의 큰 도시를 전도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드로아에 내려갔는데 거기서 환상을 봅니다. 행16:9-10절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내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절,  “바울이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유연한 태도입니까! 자기의 계획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선하여 순종하여 갔던 겁니다. 



리빙스톤(David Livingston)은 본래 중국에 선교사로 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길이 열리지 않다가 계속 다른 길이 열린 겁니다. 처음에는 실망을 하다가 하나님의 뜻이 다른 곳에 있는 줄 알고 다시 힘을 내고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윌리엄 캐리가 인도에 서 복음의 문을 연 것처럼,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에 복음의 문을 연 겁니다.



본문 8-9절을 보십시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대적하는 자가 많기 때문에 더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보면 에베소를 떠날 이유가 충분한데 오히려 그곳에 더 있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섬김의 또 다른 면을 보게됩니다. 바울은 어떤 어려움과 시련을, 포기하고 물러서야 할 조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분발하고, 도전해야 할 조건으로 본 겁니다. 



고린도후서 1:8-9절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그랬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4:10절에는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그랬습니다. 



어떤 고난이었습니까? 바울은 매일 심한 박해로 늘 목숨이 왔다갔다 했다는 겁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런 기댈 언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울때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멋이요, 삶의 맛 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려움이 올 때 쉽게 포기하거나 타협하면 안됩니다.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때인 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어려움이 올 때 더욱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물러서지 마십시오. 이렇게 물러서지 않고 도전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개입하시고 해결해 주시는 겁니다. 



마지막  12절을 보십시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고린도 교회는 바울과 아볼로를 중심으로 하여 분열하게 될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와 아볼로가 함께 고린도 교회에 가서 문제를 무마시켜 줄 것을 권했던 겁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라고 약속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할 바울의 섬김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심령 속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억지로 다그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각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님을 믿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믿는다면 다른 그리스도인 안에서도 성령께서 역사 하심을 믿어주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모든 일에 때를 따라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