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6.04 | 고린도전서 15장 1-11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전서 15장 1-11절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새벽 묵상


고전1:12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의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분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결혼문제(7장), 우상에 제사된 음식문제(8장), 예배 때의 문제(11장), 그리고 은사문제(12-14장), 그리고 오늘 본문 15장에서는 부활에 대한 문제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또 이어서 다음 16장에서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 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항상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부활 신앙이 흔들리고 있었던 겁니다. 



현대에도 과학과 이성주의 철학의 영향과, 계속적인 사탄의 공격으로 부활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 할 믿음이 부활신앙입니다. 



오늘 본문1-2절을 보십시오. 여기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랬습니다. 그리고 2절에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분명히 복음을 들었고, 복음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본문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부활신앙입니다. 



바울은 이 부활신앙이 성경적인 진리다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대로 죽으시고(3절)” 또 “성경대로 다시 사셨다(4절)라고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예언한 대로 주님은 오셨고,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또 예언대로 사흘만에 부활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 사람들의 논리로 믿고 안 믿는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적 진리다는 겁니다. 



또 바울은 이 부활의 역사적인 진리다라는 것을 본문 5-8절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셨고(5절),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고(6절),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고 그리고 모든 사도들에게도 보이셨고(7절),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8절)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본 여러 목격자들의 증언이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바울은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이 부활신앙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보십시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무슨 고백입니까?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자신을 다시 소망 가운데 살게 하셨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이 다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태초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인간의 생명은 한정된 시간동안 살다가, 병들고


늙어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죽음의 절망에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절망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찢기고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모든 사망과 절망의 세력을 다 정복하고 부활하심으로 소망의 부활을 이루신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활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도 영원한 부활의 소망을 주신 겁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이 바울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나 된 것을 감사 하기를 바랍니다. 크게 되었던지, 작게 되었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되는 것을 알고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귀한 시간에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고 오늘도 담대히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신앙이 확실한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삶이 전부가 아닌 것을 잘 압니다. 부활의 소망이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사람을 증오하고, 미워하던 바울을, 사랑의 사도로 변화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한 사건으로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목격자들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듯이, 우리도 부활의 주를 만나면 미움이 변하여 사랑의 사람, 확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이나 성경속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죄사함의 역사, 회개를 통한 구원의 역사, 성령 충만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으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이 부활의 주님을 우리가 모셔들이기만 하면, 부활의 역동적인 역사가 우리의 삶속에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런 부활의 역사, 부활의 능력들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