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05.17 | 고린도전서 8장 1-13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전서 8장 1-13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새벽 묵상
오늘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원칙주의자입니다. 특히 복음에 대해서는 원칙주의자입니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굉장히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이 효과적으로 증거되기 위해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약한 자들에게는 자신이 약한 자와 같이 되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를 원하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고전 8장에서부터 다음 11장까지 4장에 걸쳐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네장에 걸쳐서 우상의 제물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시대에 고린도교회에서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그랬습니다. 여기서 “지식이 있는 줄을 다 안다”는 말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지식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본문 4-6절에 보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밖에 없다. 그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곧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7절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런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 우상에 대하여 절을 하고 돼지 머리 앞에서 절을 하고, 돌과 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며 절을 하는 겁니다.
한국의 뉴스를 보면, 입시철이 되면, 절이나 어떤 신비한 장소에 가서 정한수를 떠놓고 비는 모습들을 보여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절에는 몇만명이 모였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새벽기도회에 몇만명씩 모이는 교회가 얼마나 있을 까요?
이렇게 이 땅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시고 그분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안다" 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이고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이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우리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1절에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사랑 가운데서 행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당시 고린도를 비릇한 이방도시들의 고기들은 대부분이 우상의 신전에 올려졌던 제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바쳐졌던 고기들이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팔려 나갔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도 본문 13절에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 것을 보면, 고기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우상의 제물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그러므로 당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곧 우상의 제물을 먹는 다는 것이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다는 것은 그 우상을 신으로 섬긴다는 의미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바벨론 포로생활 할 때 고기 먹는 것을 거부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서도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기 때문에 먹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즉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믿음이 강한 자들은 우상의 제물을 자유롭게 먹었습니다. 바비큐를 해서도 먹고, 고기를 푹 삶아서 보쌈으로 해서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그 모습을 보며 실족하는 겁니다. 어떻게 예수 믿는 자들이 우상의 신전에 바쳐진 고기를 먹을 수 있는가? 초신자들에게 그들의 행위가 많은 갈등과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이런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말해 주는 것이, 1절 말씀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라는 겁니다.그리고 11절에도 보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잘못하면 지식은 약한 자를 실족시킬 뿐 만 아니라 멸망시킨다고까지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지식은 사람을 정죄합니다. 사람을 판단합니다. 지식은 많은 경우 상대방을 심판하는 것으로 자기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특징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겁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허물을 감싸줍니다. 연약한 자를 세워줍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까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들을 꾸짖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지식이 덕을 세우는 사랑의 원리 가운데서 행하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아는 지식이 교회안에 덕이 되어야합니다. 교회 안에 덕이 되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지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4: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의 원리 안에서 행하라는 겁니다. 심지어는 은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식은 분명이 힘이지만 그 힘은 사랑 안에서만 사용되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약한 자들은 누구일까요? 이방신을 믿다가 이제 막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들입니다. 초신자들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강한 자들은 누구일까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우상의 제물도 먹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약한 자들이 실족치 않도록 할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서 빨리 강한 자로 만들면 될 것이 아닙니까?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루 아침에 약한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십시오. 어린아이들은 밤을 무서워합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도 밤을 무서워합니다. 밤은 무서운 것이 아니야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태양의 반대편쪽으로 가기 때문에 그런거야 내일 아침이면 다시 태양이 떠오를 거야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애들은 밤이 무섭습니다. 그들이 자라서 어른이되기까지는 밤을 무서워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약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자라기까지 쉽게 상처를 받으며 쉽게 실족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믿음이 강한 성도들이 양보를 해야 하고, 그들을 실족시킬만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기에 더 나아가 이렇게 다짐합니다. 본문 13절에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음식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겁니다.
제 친구 가운데 잘 믿는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담배피는 것을 보고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도 믿음 생활하면서 주초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분들은, 바울의 고백, "만일 음식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13절)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어떤 아이하고 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싸움 에서 이겼습니다. 그 때 싸움에서 진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도 너 같이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고기를 먹으면 너에게 지지 않을 텐데" 이 말에 슈바이처 박사가 충격을 받아 그 다음부터 평생 고기를 안 먹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원리로 살아야 합니다.
정말 바울에게는 한 영혼을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교회안에서 덕을 세우며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최고 기준은 얼마나 알고 있느냐? 가 아니라 그 지식이 얼마나 사랑 가운데서 행하여지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한 일이 없습니까? 여러분의 욕심 때문에, 부정직한 모습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한 일은 없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연약한 지체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어떤 손해를 보고 계십니까? 복음의 증거를 위해 여러분은 어떤 권리를 포기해 보셨습니까? 깊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