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5.13 | 고린도전서 6장 12-20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전서 6장 12-20절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새벽 묵상


오늘날 교회를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표현합니다. 모이는 교회는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모이는 것이고, 반면에 흩어지는 교회는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자신들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모이는 교회도 중요하지만 흩어지는 교회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모이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모이는데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세계적으로 많이 모이는 교회가 한국에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이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잘 하다보니까, 예배에 참석하는 일, 헌금드리고, 기도하고, 교회안에서 봉사는 열심히들 하는데, 사회속에 들어가서 교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교인들이 교회가 욕을 먹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모인 우리들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개인적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로 가게 되면, 내 자신이 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모였을 때는, 우리 모두가 윌셔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배를 마치고 우리의 삶의 자리로 흩어져 가면, 우리 각자가 윌셔 교회입니다. 



요즘 보면 트럭이 이러저리 이동하면서 음식을 파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교회에서 흩어지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윌셔교회의 이동식 교회가 되는 겁니다. 


윌셔교회를 내 가정으로, 내 직장으로, 내 삶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는 곳에서 내 몸이 성령께서 거하는 성전으로의 역활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만일 세상에서 내가 잘 못하면, 김 아무개라는 자연인이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윌셔교회가 욕을 먹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 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믿는다면 우리 자신은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믿어야 합니다. 


성전은 거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8절에도 보면 “음행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성전을 더럽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오늘날 교회 예배당 안의 성물은 더러우면 그것을 더럽게 사용한다고 야단입니다. 교회의 건물이 더러우면 성전을 이렇게 더럽히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정말 깨끗해야 할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의 몸은 더럽혀져도 더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깨끗하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동으로 운영하는 트럭식당이라도 음식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어야 사람들이 찾아 오는 겁니다. 이동하며 자동차를 수리해 주는 트럭도 있습니다. 그 트럭도 아무리 이동이지만, 부품과 기술자가 준비되어 있어야 사람들이 이용하는 겁니다. 이동이라도 대충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도 이동하는 성전입니다. 내가 사는 삶은 바로 성전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동성전으로서의 가치와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성전에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성전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보면서 우리가 이동성전으로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부족한가를 한 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첫째, 성전에는 법궤가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바로 법궤입니다. 법궤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신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법궤위에 임재하셨습니까? 법궤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에서 먹이시던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었고, 모세를 통하여 주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과 제사장 반열인 아론을 택한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시켜 주셨던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법궤는 자신들의 삶을 친히 인도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생활 할 때에 항상 행군하는 행렬 앞에서 움직였고, 요단강을 건널 때는 제밀 먼저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먼저 건너야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이동성전으로서의 삶을 바르게 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재하시는 성전은 항상 정결해야 합니다. 더렵혀서는 안됩니다. 쓸데없는 것들-욕망,  쾌락, 시기, 미움, 질투로 더럽혀서는 안됩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성전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떡을 차려놓는 상입니다. 좋은 밀가루로 구운 떡을 매 안식일마다 새 것으로 갈아놓았습니다. 떡상에 차려놓는 떡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대제사장과 그의 자손들이 성막 뜰에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룩과 꿀은 전혀 넣지 못하고 기름과 소금을 넣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떡은 곧 예수그리스도가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말씀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항상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운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즉, 말씀에서 떠나면 결국 우리는 성전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


게 됩니다. 



내 속에 말씀이 없으니까 죄를 범하게 되고 말씀이 없으니까 세상유혹에 빠져들게 되는 겁니다.



셋째, 성전에는 촛대가 있습니다.



어둠을 밝힐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꺼져서는 안된다고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동성전이라고 할 때 불을 항상 밝혀야 합니다. 불의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항상 밝은 등불을 밝혀야 합니


다. 우리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그분이 죄악의 어둠 속에서 헤매는 자들에게 등불을 비추어 주셔서 올바른 길로 찾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 밖에도 성전에는 향단(기도)이 있고, 물두멍(회개)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은 죄인들이 드리는 제물을 태우는 곳입니다.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 갈 때는 반드시 단에서 희생된 제물이나 그 피를 가지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는 예수님


의 피공로 없이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동성전이지만, 어디서든지 자신을 드리는 희생제사가 늘 따라야 합니다. 이런 희생의 제사 없이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동성전입니다. 이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야 합니다.


20절 말씀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성전안에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먼저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갖추어 질 때 온전한 성전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걸어가면 술독이 걸어간다고 합니다. 도둑놈이 걸아가면 도둑놈이 걸어간다고 합니다. 사기를 잘 치는 사람이 걸어가면 사기꾼이 걸어간다고 합니다. 군


인이 걸어가면 군인이 걸어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영접한 성도가 걸어갈 때는 성도, 예수쟁이가 걸어간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교회가 걸어간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때에 하나님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교회된 나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