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4.21 | 에스라 10장 1-15절 | 구진모 목사



에스라 10장 1-15절


1절.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절.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3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절.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5절.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6절.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그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들의 죄를 근심하여 음식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7절.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8절.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9절.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10절.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11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12절.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13절.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14절.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15절.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


새벽 묵상


오늘의 무대는 포로후기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뒤이어 상당수 주민들이 사로잡혀 감으로써 유다 왕국은 몰락하고 맙니다. 그후 거의 50년 후인 539년에 바사나라 임금 고레스가 바벨론 제국을 굴복시키게 됩니다. 바사 사람들은 관대한 종교정책을 추진하였는데, 왕과 제국의 안녕을 위해 모든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중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바사왕 고레스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새롭게 정비하라는 목적으로 바벨론에 사로잡혀 와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귀향을 허락하게 됩니다.(스 1:2-3)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주전 538년에 첫 유대인 무리가 스룹바벨의 인도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성전을 다시 재건했습니다. 그 뒤로 한 80년이 지나서야 두 번째 유대인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들의 지도자가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사장이자 학사인 에스라였습니다. 에스라가 이주한 뒤에 13년이 지나서 바사 왕은 느헤미야를 보내서 유대총독으로 삼고 성벽재건의 일을 하게합니다. 



그러니까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하였고, 느혜미아가 성벽을 완성하였다면, 에스라는 백성들의 심령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살도록 도운 정신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예루살렘 멸망 후에 날마다 드리던 제사도 끊기고, 말씀도 사라지고, 제사장도, 예언자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이 되고, 다시 활기차게 제사도 드려지고, 말씀도 살아나고, 제사장과 찬양대가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이 돌아온 겁니다. 그토록 바라고바라던 때가 온 겁니다. 그런데 에스라 귀에 들려진 이스라엘의 상황은 그렇게 평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9장 1-2절을 보니까 하나님이 그토록 하지 말라고 명하셨던 이방여인들과의 혼인 문제였습니다. 그것도 일반 평민이 아니고 제사장(10장 18절) 레위인(23절) 찬양대(24절)등이 그 중심에 서 있었던 겁니다.



이들은 제사를 열심히 드렸던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웠으며,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했던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맡았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던 겁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지요. 외적인 것은 잘합니다. 예배는 어느정도 잘합니다. 헌금도 잘합니다. 찬양대 봉사도 잘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에스라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면서 기가 막혀 앉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그냥 그렇게 대충 사는데 오늘 하나님의 사람 에스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 그는 자신이 죄를 짊어지고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죄에 민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것에 대해서 얼마나 가슴아파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에스라는 기도했습니다. 비통해 하며 통곡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도의 자리로 옮겼던 겁니다. 에스라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슴아파하고 비판하는자리에만 머무르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로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일에 민감해야 합니다. 작은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10장16절 이하에 보면 3개월동안 조사한 결과가 110명이 이방사람들과 혼인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2,360명중에 110은 작은숫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것을 작게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죄는 아무리 작을지라도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 겁니다.



오늘 에스라는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의 외형은 그럴듯하게 보일지라도 내면을 개혁하고 변화하지 않고, 죄악속에 그대로 있다면 오늘 회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문제를, 자녀의 문제를, 교회의 문제를 누구에게 돌리기 이전에 자신이 끌어안고 회개하며 기도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10장 1절을 보니까 에스라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성전에서 울며 기도하고있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같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혼자 기도하기 시작하니깐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죄를 느끼고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 사람이 기도하니까 기도의 동역자가 모여들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사역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혼자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가슴이 아프고 슬퍼서, 하나님의 사명 때문에 눈물이 나서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은 함께 할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무리중에 또 한사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스가냐’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본문 2절에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우리가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우리의 잘못을 솔직히 먼저 인정하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주 끝났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는 겁니다. 그리고 소망을 선포하는 겁니다. 



그리고 스가냐는 또 외칩니다. 4절에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이제그만 우시고 일어나십시오, 우리가 힘써 도와주겠습니다. 그러니 힘을 내십시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한 사람은 약합니다. 그러나 둘을 다릅니다. 셋은 더 다릅니다. 이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주의 교회를 이루는 것 처럼, 역시 누군가는 울고, 기도하며, 가슴 아파하고, 누군가는 힘써 돕는 사역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교회에 뭔가를 받으려고 옵니다. 그러나 오늘 스가냐가 보여준 중보자의 모습처럼, 사역자의 가슴을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워주고, 중보사역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교회에 바로 이런 사역자가 늘어나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하는 사역자는 오늘 에스라처럼 주님 앞에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역자와 함께 울면서 중보 해 줄수 있는 또 다른 사역자, 바로 중보사역자가 필요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윌셔교회의 미래이고, 아니 현재의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