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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3.11 | 시편 130편 1-8절 | 구진모 목사



시편 130편 1-8절


1절.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절.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절.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절.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절.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절.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절.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절.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새벽 묵상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깊은 곳’이란 의미가 무엇입니까? 오늘 시편 기자의 기도의 자리를 뜻하는 겁니다. 


깊은 곳이란 가장 낮은 곳을 뜻 합니다. 마치 요나의 기도의 자리가 어디였습니까? 요나서 2:2절을 보면,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그랬습니다. 스올의 뱃속이란 물고기의 캄캄한 뱃속입니다. 즉, 시인은 지금 가장 힘든 상황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진실한 기도는 깊은 데서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야곱은 돌베게가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요셉은 차디찬 감옥이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그럼 왜 이런 자리에서 기도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어제 묵상한 누가복음 15장에서도 보면, 둘째 아들은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젊음이 있었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둘째 아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버지를 멀리 떠난 그 순간부터 성공과 행복의 길로부터 멀어졌고 실패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그를 영접하고 최상의 대우를 해주었던 긍휼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둘 째 아들은 이런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에 둘째 아들에게는 불행이 시작되었던 겁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불행의 시작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그 고난의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깊은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떠난 자신의 죄악을 사해 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절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여러 가지 형벌이 따르게 됩니다. 그 형벌을 보면, 집행유예입니다. 죄는 있지만 풀어 주어서 집에서 반성하며 다시 재기의 삶을 살도록 기회를 줍니다. 또 바로 교도소로 보내는 일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얼마 동안 법의 보호를 받게 하는 겁니다. 또는 얼마동안 봉사활동을 하게 하거나, 아니면 사형을 시키는 일도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모두의 죄를 한가지로 해결하십니다. 집행유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봉사를 시키는 것도 아니고, 또 교도소에 가두는 것도 아닙니다. 사형을 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는 어떤 죄든지간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용서하여 주시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머리털보다 많은 죄라도 하나도 남김없이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먹보다 더 검고, 주홍보다 더 붉은 죄일지라도, 어떤 죄라도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는 우리의 죄를 기억치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랑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함을 받아, 죄인이 의인되고, 마귀에게 속한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깊은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온통 두려운 곳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온통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곳이요, 불 공평한 곳이요, 살아갈 희망이 없는 곳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땅의 것을 보지 말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처한 고난과 역경, 그 자체를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렇다고 그냥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 6절을 보십시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고 했는데, 여기서 기다림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한다는 뚯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자신을 파수꾼에 비유하면서 파수꾼이 밤새 보초를 서고,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애타게 아침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듯이, 자신도 지금 위험한 지경에서 지치고 곤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갈망하고 있음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자세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의 자세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기질은 너무 조급해서 기다리는 자세, 인내의 자세가 부족합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합니다. 기다려 주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 어떤 결과를 바라고 기대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알찬 인생의 결실은 기다림에 있습니다.  가을의 수확을 위해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와 같이 가디림의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기다림이 없이 이루어지는 위대한 결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2은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시편25:1절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여러분, 땅만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향해 눈을 드십시오. 내 인생의 검은 먹구름만 쳐다보며 불평하기 보다, 그 구름 저편에 찬란히 빛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승리하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순절 기도제목 같이 읽으며 기도하겠습니다. 


1.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마음대로 살았던 교만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2. 온 세계를 지독하게 힘들게 했던 코로나가 종식이 되게해 주시고, 모든 불안에서 자유하게 해주시고, 이 땅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3. 이번 사순절을 통해서 더욱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을 온전히 닮아 가는 시간되게 해 주시옵소서. 


4. 우리 가정이 화목하게 하시고, 말씀과 찬양과 기도가 가득하게 해 주시옵소서.


5. 우리 교회가 성령충만, 사랑충만, 은혜충만한 교회되게 하시고, 무너진 이 땅에 희망을 주고,  살아 있는 예배가 늘 드려지게 해 주시옵소서.


6. 몸과 마음이 아픈 교우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교우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고 다시 일어 설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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