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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2.27 | 잠언 29장 15-27절 | 구진모 목사




잠언 29장 15-27절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는 부모가 자녀에게 매를 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물론 부모의 욕심 때문에, 자기의 감정풀이로 매를 드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겁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고 매를 드는 것은 통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부모들이 자녀를 신성시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욕망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온갖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 능력 있는 부모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결과로 우리 주위에 보면 더러 부모 자신이 이런 자녀들로 인하여 나중에 곤욕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4절에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역사로 보면 노아 홍수 때에 노아는 은혜를 입어 방주를 준비해서 당시 악인의 망함을 노아가 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악인들의 멸망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이렇게 악인의 멸망을 늘 목격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 받는 현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여러 곳에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편 37:1절에도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악인들의 삶이 아무리 형통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인이 아무리 형통해 보여도 부러워 하고,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불의한 일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을 믿음으로 볼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또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새 번역에는 “계시가 없으면 백성은 방자해지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묵시’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묵시의 말씀이 없어진다는 것은, 말씀이 없다는 겁니다. 말씀이 없으면 방자하게 행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겁니다.

묵시가 없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출애굽기 32:25절입니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방자하게 행한 일이 어떤 일입니까? 금송아지를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세가 40일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40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없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묵시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어 먹고 마시며 뛰어놀며 방자하게 행했던 겁니다.

신명기 18:20절에 보면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 마음대로라는 말이 방자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없다면 자신이 절대적인 판단과 가치기준이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방자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방자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방자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인간의 능력이 아닙니다. 자기가 죽어야만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정상적인 삶인 겁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버리신 이유 중에 하나가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이레 동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약속된 날이 되어도 사무엘을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군인들은 적들이 무서워 도망을 갑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백상들의 흩어짐을 면하려고 자신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보다 사람의 힘을 더 의지했던 겁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위기를 만났을 때, 식상할 정도로 많은 처방책들을 내어 놓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법으로 위기를 피해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울왕의 방법과 다를바가 없는 겁니다.

요한복음 6:39절에 보면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좋게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립니다. 그런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길은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사는 겁니다. 로마서5: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이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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