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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2.14 | 잠언 24장 23-34절 | 구진모 목사




잠언 24장 23-34절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추수 때는 매우 무더울 때입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목이 마르다 못해, 타는 것 같은 갈증을 느끼는 때에, 추수하는 사람들에게 얼음을 띠운 냉수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이처럼 시원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시원함을 주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충성입니다.

오랫동안 아프리카에서 사역한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여러 해 동안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선교사는 그 곳에서 사랑하는 부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아프리카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을 때, 부두에는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소리, 수많은 환영 인파가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선하는 계단에서부터 전용차까지 붉은 캐펫이 깔렸고, 좌우로 각료들과 시민들이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대통령이 배에서 내려 전용차에 오르자 붉은 주단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가 홀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휴가를 다녀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선교 현장에서 두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고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깊은 좌절감을 느끼면서, 정신없이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카펫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 유리 길을 깔고 내가 친히 너를 마중 나가마. 사랑하는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선교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이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죽도록 충성하는 신실한 일꾼이 되었다는 겁니다.

충성! 생명을 다하는 충성! 이것은 보냄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보낸 분에게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시원함입니다.

‘충성’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으로 풀이합니다. 즉 주인의 명령, 뜻에 대하여, 중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충성스러운 마음은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중 하나이고,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는 일꾼의 근본 자세입니다.

고린도전서 4:2절에도 보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2:10절 끝부분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충성이라는 말을 가장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말씀이 누가복음 17:7-10절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일군의 자세에 대하여 가르치신 말씀인데,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무슨말씀입니까? 환경과 여건을 초월해 충성할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이런 충성이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무더위 속의 얼음냉수 같은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자신의 환경과 여건을 내세우면서 주어진 일에 성실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음을 핑계하고, 아직 기회가 아니라고 핑계합니다. 재능이 없고, 너무 바쁘고, 너무 피곤하고, 너무 춥고, 너무 덥고, 돈이 없고, 건강이 좋지 않고, 등등. 이는 하나님께 대한 불충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 이름이 많이 오른 사람 중에 ‘화니 제인 크로스비’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수많은 찬송 시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크로스비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소경이었습니다. 생후 6개월만에 실명이 된 그녀에게는 삶의 의미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타고난 운명에 따라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녀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크로스비는 무작정 이렇게 살다가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크로스비는 부르짖으며 피눈물 나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크로스비에게 영감이 넘치기 시작했고, 주옥같은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등. 수많은 찬송시를 작사해서 지금까지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시원함을 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모든 환경과 여건을 뛰어 넘어 생명을 걸고 충성한 사람들에 의하여 지켜져 왔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만을 시원케 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며, 사람들을 시원하게 하는 충성된 사람이 되겠습니까?

누가복음3:10-14절을 보면, 10절에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무리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11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느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12절에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13절에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14절에 “구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을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했습니다.

이 물음은 우리가 지금 주님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답변은 우리가 하기에 어려운 일이나 멀리 있는 일들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즉 가까이서 그리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각자의 현재 생활에 대한 일들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충성도,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겁니다. 지금 여러분은 주님께 대해서 얼마나 충성되게 일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보시고 평가하시는 것은 우리의 외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으로 자원하여 행하는, 거짓 없는 성실함을 보시는 겁니다.

이런 충성스러움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이며, 성도들과 많은 사람들을 시원하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무더운 날에 갈증을 잊게 하는 얼음냉수 같은 신앙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에서 할 수 있는대로, 충성 되게 일함으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릴뿐만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까지 예비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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