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12.08 | 골로세서 3장 18-25절 | 구진모 목사
골로세서 3장 18-25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새벽 묵상
우리는 여러가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어떤 자세로 일을 하고 있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나간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대 직장인들이 예외 없이 앓고 있는 병 하나가 월요병이라고 합니다. 직장인들치고 이 월요병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이 월요일이면 학교 가기 싫어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어떤 사람이 직장에서 비정상적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비유한 것이 있는데, 이순신형이 있다는 겁니다. “나의 퇴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아무도 모르게 빠져 나가는 경우입니다. 햄릿형도 있습니다. “퇴근이냐 퇴사냐 이것이 문제로다” 사생결단하고 퇴근하는 경우입니다. 나폴레옹형도 있습니다. “나의 사전에 정해진 퇴근시간이란 있을 수 없다” 배짱좋게 퇴근하는 경우입니다. 맥아더형도 있습니다. “나는 퇴근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에서 우리가 붙잡아야할 중심 문장은 23절 말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중에서도 “주께하듯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 뭡니까? 섬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섬김입니다.
섬김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덕목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섬김이 자발적이냐 강제적이냐 하는 겁니다. 자발적 섬김은 섬기는 자나 섬김을 받는 자에게 행복함을 줍니다. 그러나 억지로하는 피동적 섬김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자발적인 순종이 중요합니다. 우리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뭘 부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때는 마지 못해서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럽니다. “아빠는 싫다면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그런데 아빠도 너희가 필요한 것을 마음이 기쁠때만 들어 줄거다”고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억지로 순종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친히 종의 모습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심으로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아무리 선한 일도 진실과 성실이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단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억울한 종살이, 억울한 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한 순간도 자신이 종살이한다, 옥살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요셉에게 그런 생활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수업의 한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종살이를 종살이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심으로 주인인 보디발을 하나님께 하듯 섬겼습니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면서도 진실과 성실함으로 감당하다보니 애굽의 바로왕 앞에 나아가는 길 닦는 과정이 되었던 겁니다.
어린 나이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서 총리 대신의 일이 맡겨질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보디발의 집에서의 가정 총무의 일과 감옥에서 죄수들을 관리하는 인력관리의 경험이, 한 나라를 관리하는 행정 관료로서의 수련장이 되었던 겁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젊은 시절 미국에 유학을 와서 주말에 잔디 깍는 일과 집안 청소일을 하면서 학비를 조달했습니다. 그런데 청년 안창호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쓸고 닦으며 그 일을 정말 성실하게 했습니다. 어느날 주인이 2층 베란다에서 일하는 그런 안창호의 성실한 모습을 보면서 “저 청년은 청소하는 자도 아니고 잔디깍는 자도 아니라 신사로구나”고 감동을 했다는 겁니다.
나중에 안창호는 떠나면서 주인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제가 떠난 후에 이 자리를 한국 유학생에게 주십시오” 이 때 주인은 “청년, 청년의 성공을 비오. 청년은 우리집에서 몇년동안 일을 했지만 당신은 청소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로 신사였오”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지도자는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위치에서든지 감동을 줄 수 없는 자는 성공자가 될 수 없습니다.부모로서 성공하려면 자녀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으로서 성공하려면 아내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로서 성공하려면 남편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로서 성공하려면 학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되려고 애쓰기 전에 자신의 위치에서 관계된 자에게 감동을 주는 자가 되십시오.
정직하고, 성실하고, 관대하면 누구나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십니까? 그러면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성도로 살아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생애를 주님이 책임져 주실 겁니다.
“주님께 하듯이” 살아 보십시오. 이 말은 “모든 일을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라는 말입니다.
주님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고,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을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통사고로 그 딸을 잃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과 상실감으로 몇날 며칠을 잠을 잘 수 없이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날 아내에게 갑작스런 성령의 감동과 위로가 생각으로 찾아왔습니다. “네 딸은 내가 잠시 네게 기쁨을 주기 위해 맡겨둔 나의 천사였다”
그렇습니다. 사람으로 보여지고, 내 것으로 여겨지면 우리는 사람을 바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악하고 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주님으로 보여질 때, 나의 모든 소유가 주님을 섬기는 도구로 보여질 때, 그 때에 비로소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한 천국이 이루어 지는 겁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들을 때, 섬겨야 할 얼굴들이 보이십니까? 주님은 물으십니다. “그를 나로 알고 섬길 수 있느냐?”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아내이나 아내이지 못하고, 남편이나 남편이지 못하고, 자식이나 자식이지 못하고, 직업인이나 직업인이지 못한 여러분이 되지 마십시요.
우리의 삶에 주님처럼 섬길 자가 없다면,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빈수레 인생이 되고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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