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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1.16 | 잠언 17장 13-28절 | 구진모 목사




잠언 17장 13-28절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은 선하지 못하니라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새벽 묵상


잠언서에 보면 서로 화목케 하는 삶이 얼마나 복된가 하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잠언 10:12절에도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4:7절에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면서 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다 죄인인데 사랑하면 그 죄를 덮어버린다는 겁니다.


잠언 17: 9절에도 보면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도 사랑하게 되면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지만, 사랑이 없는 사람은 자꾸 그것을 드러내서 결국 이간시켜 버린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 자식은 희망 없는 자식이고 망나니야”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그 아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달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어머니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없으니까 그 사람이 망나니에 희망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잘나서 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때문입니다. 로마서 5: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원수 되었던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던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길이 열렸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만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가 이 예배당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오셨습니다. 그 이름 외에는 주님 앞에 나올 길이 없는 겁니다.


한 번은 큰 교회를 목회하시던 목사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고 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후에 늘 여선교회가 점심을 준비하는데, 음식을 준비하다보면 좀 남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모자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았다고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봉사하신 분들이 조금씩 나누어 가지고 갔는데, 나중에 들려오는 말이 “아무게 집사는 말야. 자기 먹을 음식을 다 싸가지고 간다”는 말이 들려진겁니다. 그 말이 빙빙 돌아서 나중에는 “음식 해 놓은 것 그 사람이 다 가지고 간다”고 말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은 사람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말을 전한 사람한테 와서 따지고 하다가 결국 집사들끼리 싸우다 경찰을 부르는 일까지 생겼다는 겁니다.


이거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도둑질했다는 말도 아니고 그저 말 한마디가 돌고 돌아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된 것이고, 결국 경찰까지 부르는 난리가 난 겁니다.

서로 조화를 이룰 때 화목하고 행복한 겁니다. 색깔도 그래요. 한 색깔만 있으면 지루합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색깔이 조화를 이루니까 아름답게 보이는 겁니다. 합창도 각 파트별로 조화를 이루니까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는 겁니다. 사랑으로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겁니다.


오늘 본문에도 많은 좋은 말씀들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본문 24절을 보십시오. “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끝에 두느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보면 소중한 것들이 있고 급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자는 당장 눈에 급급한 일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대게 사람들은 급한 일을 소중하게 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급한 일들이 단지 소중하게 보일 뿐이지, 사실은 소중한 일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급한 일들보다는 소중한 일에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에 투자를 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소중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6:33에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인의 소중한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도 소중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영적인 일, 기도하는 일, 말씀 보는 일, 사랑하는 일이 더 소중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더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럼 이 소중한 영적인 일을 먼저 하기 위해서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목적을 바로 알고, 그 목적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왜 내가 사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왜 훌륭한 줄 아십니까? 자기의 할 일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면서 생명을 걸고 일하는 바울의 이런 모습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상처 받은자, 병든자, 심령이 상한자를 찾아가셔서 치유해 주신 일입니다.


여러분, 먼저 소중한 일을 하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무엇을 해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대게 우리는 어려우면 남탓, 환경탓을 합니다. 이렇게 남탓, 환경 탓하다가 자신의 성질에 못이겨서 세상을 일찍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행복은 삶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겁니다.


여러분, 너무 긴장하며 살지 마십시오. 여유 있게 사십시오. 조그마한 일에 너무 신경 쓰면서 살지 말고, 특히 과거의 일에 너무 사로 잡혀 불행하게 살지 마십시오.


웃고 살아야 합니다. 한번 웃어보세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습입니다.


한 번은 운전을 하다가 앞에 가는 차가 너무 늦게 가는 겁니다. 그래서 빵~하고 경적을 울리려다가 옆으로 가서 어떤 인간이 이렇게 늦게 가나 인상을 쓰고 쳐다보았더니, 우리 교인입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 한 적이 있습니다. 몇 초 사이로 얼마나 아찔했는지 모릅니다.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인생을 너무 초조하게 심각하게 걱정하며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즐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뭐라고 했습니까? “내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야 삶이 여유로와 집니다. 우리가 왜 어려움을 당합니까? 자꾸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근심 걱정 하면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있습니까? 문제를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보십시오, 여리고를 도는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이 여리고 성을 돌 때 어떠했습니까? “야! 여리고 성 좋다”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바라보고 돌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만 생각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여리고 성이 넘어갔습니다.


어느 식당에 가니까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괴로워 할 겁니다. 자신을 바라보면 우울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쉼을 얻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우리에게 실망을 줄 뿐 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에 바치는 시간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더 갖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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