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1.10 | 잠언 14장 17-35절 | 구진모 목사




잠언 14장 17-35절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정의하는 선인(선한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모든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비를 골고루 주시는 것처럼, 선인은 좋아하는 사람이던, 미워하는 사람이던,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는 말은 악인은 결국 사랑을 행하는 자에게 그들 자신을 낮추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동생 요셉을 애굽상인들에게 팔아버린 악한 형들이 나중에 요셉 앞에서 엎드려 긍휼을 구하는 모습이 좋은 예입니다.


또한 다윗이 약할 때, 쫒길 때, 어려움을 당할 때 사무엘하 16:7에 보면 시므이가 조롱을 합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윗이 다시 왕권을 회복하고 왕궁으로 돌아 올 때 시므이가 어떻게 합니까? 사무엘하 19:19절에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라고, 다윗왕에게 머리를 숙이고 긍휼을 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불의한 자는 결국 선인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습니다.


또 본문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 미음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 말하면 “가난한 사람은 이웃으로부터 미음을 받는다. 그러니 돈을 벌어라”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슬픈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말씀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상황이 좋을 때는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따릅니다. 그런데 내가 가난해 지거나 상황이 나빠지면 그 많던 친구들이 떠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잠언은 이 슬픈 현실에 대하여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런 슬픈 말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가 뭡니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내가 아니라,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황이 좋을 때, 우리는 우리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다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냉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래야 혹시 내가 가난해졌을 때 이전의 우정이 사라지게 될 때라도 놀라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 또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나도 가난한 사람을 미워하고, 부자를 사랑하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돈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 배운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마치 자신을 높이는 것처럼 생각했다면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이제는 깊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줄 믿습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고했습니다.


우리 믿는자들은 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사랑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언제 부르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도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기도하기를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순교를 한 겁니다.


하나님은 이웃 사랑을 명하실 때에, 측은히 여길 사람과 여기지 않을 사람을 구분해서 우리에게 명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편견없는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표입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문을 쓴 것은 “악인은 분명히 길을 잃을 것이다”는 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악을 도모하는 자는 길을 잃게 될 것이라고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네비게이션이 다 있어서 길을 잃을 경우는 없지만, 예전에 네비게이션이 없을 때 낯선 산속을 여행하다 길을 일고 고생했던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이 모르드게를 죽이려는 꾀를 내었다가, 오히려 자신의 꾀에 빠져서 죽임을 당한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선을 계획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그 길을 축복해 주신다는 겁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그 아름다운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열왕기상 8:18절에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우리도 선을 행한 후에 내 자신이 열매를 얻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좋게 여기시고 자손들을 통해서라도 그 뜻을 이루어 주시는 겁니다.


본문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상태가 육체적 몸에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모든 병이 다 마음에서 온다고 합니다. 고요한 마음이야 말로 우리 몸의 생명을 건강하게 보존해 주지만, 분노로, 시기로 격동하는 마음은 뼈를 썩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망가뜨리는 겁니다.


고요한 마음을 얻으려면 우선 우리 마음에 있는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그 집착하는 마음이 우리 마음을 평화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뉴스에서 보면 불명예스런 괴로움에 직면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 결국 자기가 집착했던 것들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음이 행복하지 않습니까? 내가 집착하는 것에서부터 한 발씩만 물러서 보십시오.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