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9.15 | 히브리서 9장 1-10절 | 구진모 목사
히브리서 9장 1-10절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새벽 묵상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임시 장소로 성막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5:22절에 보면 성막 건축을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거기서(성막에서) 내가(하나님께서) 너와 만나고” 했습니다.
신약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만나주시고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장소입니다.
오늘 본문은 옛 언약의 성소인 성막에 대하여 기록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옛 언약의 성소인 성막을 통해 더 크고, 더 좋은 온전한 장막을 소망하며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막의 구조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 1-5절에 성막의 구조에 대하여 기록한 후 마지막 5절 하반절에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설교에서는 성막의 구조의 자세한 내용과 영적 의미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히브리서 기자의 가르침대로 대략적인 구조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막을 먼저 설명함으로써 구약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성막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출애굽기 25-31장 그리고 35-40장은 모두 성막에 관한 규정과 건축 양식과 그 내용물에 관하여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성막의 외형은 가로가 25미터(50규빗), 세로가 약 50미터(100규빗)정도의 크기로 모두 흰색 천으로 둘러쳐졌는데, 아마 성막의 중요한 기능인 거룩함과 성결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인 동편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희생제물을 불로 태워 드리는 놋제단, 곧 번제단이 있고, 좀더 앞으로 나가 왼쪽으로는 놋으로 만든 물대야 곧 물두멍이 있는데 그곳에서 제사장들은 손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두 개의 방이 있습니다. 첫째 방은 성소로 모두 천으로 덮여졌고, 그곳은 오직 제사장들만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떡상이 있고, 금촛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향을 피우는 분향단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휘장으로 분리된 지성소가 있습니다. 이 곳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단 한 차례 대속죄일에만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는”언약궤”가 있는데, 그 언약궤 안에는 언약의 돌판과, 만난를 담은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덮고 있는 덮개 있는데 덮개 위에는 날개를 펴고 있는 두 천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막에 대하여 성경에는 용도나 모양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거룩히 구별된 예배의 처소로서의 의미로 ”성막” “성소”라고 부르기도하고, 겉이 휘장으로 덮어져 있다고 해서 “장막:이라고 하고,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고 해서”회막”이라고도 하고, 율법과 계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다라는 뜻에서”증거막”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려 졌지만 모두 성막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또한 이 성막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광야생활에서 부단히 이동하는 동안에도 성막은 항상 모든 백성들이 잘 보이는 중심에 있었습니다. 머물 때도 가장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 말은 어디를 보아도 도움을 바랄 수 없었던 광야에서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도우심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기자는 그 때의 성막은 불완전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1)성막은 세상에 속하였기때문(1절). 2) 더 위대한 것의 모형이기 때문(2-5절).
3) 백성들이 가까이 갈 수 없었기 때문(6-7절). 4) 일시적인 것이었기 때문(8절, 10절).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 좋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고, 온전한 하늘의 장막이 필요한 겁니다.
본문 9절에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 장막의 모형이요, 상징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그 장막(성막)안에서 드려진 예물과 제사도 예수의 모형이요, 육체의 예법에 불과 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막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 가운데 거처를 정하시고 그들과 함께 사시겠다는 표현으로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겁니다. 그렇게 하시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핵심이었습니다.
성막을 세워 그 안에서 죄를 사하는 의식을 거행하도록 하신 것은 죄 많은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의 표현이었습니다. 제사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귐이 비로서 가능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구약의 대제사장이 매년마다 한 차례 씩(대속죄일)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지낸 것은 아직 ”온전한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단번에 모든 죄의 용서가 이루어졌다면 매년마다 반복해서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려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속죄 의식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차 나타날”온전한 속죄 제사”를 소망했던 겁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성막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셨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