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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9.02 | 히브리서 2장 1-9절 | 구진모 목사




히브리서 2장 1-9절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새벽 묵상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히브리서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환란과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상황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말씀에 대해서 몇가지 권면을 주고 있는데, 그 하나가 말씀에 대하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히브리서 3:7-8절에 보면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말씀에 둔하지 말라는 겁니다. 히브리서 5:11절에 보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오늘 우리가 같이 봉독한 본문 1절에 “그라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즉, 말씀으로부터 표류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지 아니하면 표류하게 된다는 겁니다. 말씀으로부터 표류하게 되면 결국 말씀을 의심하게 되고, 말씀이 의심이 되니 마음이 완악해지고, 둔해지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고, 결국은 말씀에 도전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1절에 “그러므로”라는 말은 1장의 말씀을 가리키는데, 1:3절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4절에는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이렇게 모든 천사들보다 훨씬 우월하신 그리스도께서 전해 주신 복음을 “그러므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삶이 너무 편안해서, 또는 분주한 생활 때문에, 또는 어떤 박해와 핍박때문에, 아니면 현실생활에 대한 애착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표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조그마한 배 한 척이 심한 바람을 거슬러 노를 저어 가는 모습이 초대 기독교인들의 모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풍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당하는 박해와 유혹입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었다면 그런 회유와 박해를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떠날 수 없었던 겁니다.


그 때 상황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나야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떠나면 죽는 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만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을 보면 그들은 그런 핍박과 위협속에서도 평안했습니다. 기쁨이 있었습니다. 위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본문 3절에 “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받은 구원이 왜 큰 구원입니까?


첫째,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 보혈의 피로 우리가 얻은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얻은 구원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기에 큰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믿는 우리를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성도들이 구원 받은 이 은혜를 등한히 여기다가는 하나님이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는 구원을 거저 얻다시피 손 쉽게 믿음으로 받았지만, 이 구원은 결코 값싼 대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희생을 치루고 얻어진 구원이기 때문에 이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구원을 절대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이기 때문에 큰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큰 구원입니다.


그럼 이 같이 큰 구원을 어떻게 확증해 주셨습니까?


본문 3-4절에 보면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주님이 직접 확증해 주셨고, 둘째는 주님으로부터 들은 자들이 확증했고, 셋째는 하나님께서도 친히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으로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히브리서를 받는 수신자들을 보면 오래 믿은 신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래 믿다 보면 말씀을 듣고 그냥 흘러 보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흘러 보내는 자는 영혼의 홍수를 만나 자신이 떠내려 가는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어떤 핍박과 박해와 회유 가운데서도 능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낙심중에 있는 분들 계시면, 이 말씀을 듣고, 새 힘을 얻어 마음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영접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붙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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