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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8.24 | 사도행전 26장 13-23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26장 13-23절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의 바울의 모습은 그의 마지막 선교지인 로마로 향하기 직전에 가이사랴에서 유대 왕 아그립바왕 앞에서 심문을 받으면서 자신을 변호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런 모습은 단지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려는 논리가 아닙니다. 듣는 사람들이 듣고 “옳소! 맞소!”라고 할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담대하게 왕 앞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된 것이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지금 왕 앞에서 증언 하는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전하는 것도, 거절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만일 바울이 자기의 경험 한 것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바울은 왕 앞에서도 눈치보지 않고 담대하게 전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예수를 전하는 이유를 예수가 자신을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본문 14절 중간부터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 오셔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를 대적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해 주는 말입니다.


여기 “가시채”는 끝에 뾰족한 추가 달린 채찍인데, 짐승이 뒷발질을 할 때 가시채로 맞아서 오히려 고통만 더 커지는 경우를 비유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의 바울의 모습은 타고난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몹시 고집이 세고, 잔인할 만큼 거친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앞장섰던 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1에 보면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6:9절에는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행전 26:10절에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11절 끝부분에 보면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다메섹도 그렇습니다. 외국입니다. 외국에 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메섹으로 가다가 본문 13절에 보면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자신에게 비추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음성을 들었고, 바울이 15절에 “누구시나이까”하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었고,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던 겁니다. 이제 과거의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그 어떤 제도가 사람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적인 어떤 교육이나 방법이 결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만이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킵니다. 오직 예수만이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죄악들을 씻어 주시고, 삶을 변화시켜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외친 자신의 회심한 간증의 내용을 보면 몇가지 복음을 받는 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복음을 받은 자는 영적인 눈을 뜹니다. 그래서 1)영적인 세계를 보게 됩니다. 2)영원한 구원의 길을 보게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영적인 눈이 뜨여 지기 전에는 제한적인 것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뜨여지면 넓은 영적 시야를 갖게 되는 겁니다.


둘째는 18절에 복음을 받은 자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집니다. 이 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5:24절에 보면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에베소서 5:8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빛의 자녀들 답게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겁니까? 착하게 사는 겁니다. 의롭게 사는 겁니다.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18절에 복음을 받는자는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은혜가 있습니다.


사탄의 노예였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겁니다. 부모는 자기 자녀를 책임집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겁니다. 아멘!


넷째로 18절에 “죄사함을 받습니다” 죄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해 주시는 겁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심의 결과입니다.


다섯번째로 18절에 “기업을 얻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릴 소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시간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지금까지 나의 전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에 들어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들에게 이런 다섯가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 하면서 우리는 먼저 복음을 받은 전도자로서의 긍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서 1: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내일 묵상할 말씀이지만, 사도행전 26:24절에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받고 새롭게 된 것을 증언 할 때 베스도 총독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25절에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는 겁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미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정신차린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얻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영생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이제는 이 특권을 우리가 받았음을 확신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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