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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8.17 | 사도행전 22장 30절 - 23장 11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22장 30절 - 23장 11절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은 이 산헤드린 공회에 서서 바울이 변호한 내용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기관입니다. 아주 무서운 기관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거짓 증인을 매수해서 빌라도에게 보낸 곳입니다. 스테반을 때려죽이라고 판결한 곳이 바로 산해드린공회입니다.


이제 바울은 이 자리에 서서 담대하게 자기를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1절입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이 말은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고,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양심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런 내가 왜 죄인이 되어서 죽도록 매를 맞아야 하고, 당신들 앞에 이렇게 서야 하는 것입니까?”라는 뜻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갑자가 대 제사장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말합니다. 2절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고 명령을 합니다.


“입을 치라” 이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일단은 증인으로 불렀으면 그 말을 다 들어봐야 하는 것이고, 들은 다음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죄가 정해지면 그 다음에 때려도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울이 한 마디 하자마자 기분 나쁘다고 입을 때렸다는 겁니다.


여러분! 입을 얻어맞으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이런 모욕을 받고 바울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욕을 합니다.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 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여기서 “회칠한 담”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다른 말로 회칠한 무덤입니다. 이 말은 속에는 썩은 시체가 있으면서도 겉은 매끄럽고 화려한 회칠한 무덤을 비유한 말입니다. 즉 바울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에게 ‘네 마음속에는 죄와 불의와 탐욕이 가득 하면서, 겉으로는 의인인 척 하는 이 외식하는 인간아” 그런 뜻입니다. 굉장한 모독입니다.


이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사람이 “너 누구보고 욕하느냐? 저 분이 대 제사장이시다”고 말 하는 겁니다. 그러자 바울은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말라 했는데, 나는 그가 대제사장이신 줄 알지 못해서 그랬다”고 당장 사과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경건입니다. 실수하고, 잘 못한 것은 바로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경건입니다.


바울은 바로 사과를 하고, 법정을 둘러서 산헤드린 공회의 사람들을 보니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골고루 섞여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바로 본문 6절에 “자신도 바리새인이고, 지금 자신이 심문을 받고 있는 것도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고 주장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적어도 이렇게 말하면 부활을 철저하게 믿는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편이 되어 도와 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생각대로 바울이 이 말을 하자 바리새인들은 바로 바울 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을 보면 “그 말을 한 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졌다”고 했고, 9절을 보면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고 바울을 위해서 변호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천사도 믿지 않으므로 바울을 죽이겠다고 서로 다툽니다. 그러자 천부장이 이러다가 사람 죽이겠다 싶어 바울을 다시 끌어다가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단은 위기에서 벗어나 감옥에 다시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었습니다. 같은 동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이제는 기댈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부서졌습니다. 영적으로도 예루살렘에 오면 고통이 있다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가혹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이 때 바울은 내가 계시를 잘못 받은 걸까? 하는 의심도 들었을 겁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영혼도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바울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지금 바울의 관심사는 지금 내가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로마에 갈 수 있을까? 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갈 수 있다. 내가 로마로 너를 보낼 것이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 여기서 “로마로 너를 보낼 것이다”라는 말 속에는 많은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죽을지 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로마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원수들이 너를 죽인다고 이를 갈며, 몽둥이를 들고 협박해도 걱정할 것 없다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위해 가는 우리의 인생 길도 울퉁불퉁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은 다 몰라도 됩니다. 결론만 알면 되는 겁니다. 마치 배가 항해하고 있는데 풍랑이 일었습니다. 불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항구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아무리 폭풍이 불고, 높은 파도가 쳐도 상관없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항구까지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항구까지는 가는 겁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빅터 프랭클’이란 정신과 의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나치 수용소에서 모진 고문과 학대를 받았지만 잘 견디어 내고, 마침내 살아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증언하는 내용 가운데, 그가 수용소에서 죽어 가는 사람을 잘 관찰해 보니까, 제일 빨리 죽는 사람이 낙심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그가 생각한 것이 아무리 매를 맞고, 심한 노동을하고, 모욕적인 소리를 들어도 빨리 자신의 과거를 잊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과거에 박사였고, 의사였고, 유명한 교수였고, 이런 생각하다가는 빨리 죽을 것 같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화가 날 때, 이름도 아니고 번호로 자신이 불려 질 때에도, 군화 발에 짓밟히는 고통이 있을 때, 내 자신의 현실을 빨리 인정하자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낮아졌을 때는 낮아진 것을 인정해야지, 과거에 내가 어땠는데? 하면 화병으로 죽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는 겁니다.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목적을 이 지긋지긋한 수용소를 벗어나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곳에서의 불의한 고문에 대하여 나치가 우리를 얼마나 학대했는지 증언하는 것이 나의 남은 생의 사명이다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나치의 고문을 더 똑똑히 기억해 두기 위해 참고 쳐다보게 되더라는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하나님의 역사를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로로 가든, 세로로 가든, 형통 중에 있든, 고난 중에 있든, 눈물 중에 있든,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유익한 방법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바울에게 말씀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11절입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 하여야 하리라” 아멘.


여러분이 걱정 하는 것 처럼 되지 않을 겁니다. 망한 것 같지만, 실패한 것 같지만,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일어설 겁니다. 다시 살 겁니다. 최후에는 승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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