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8.03 | 사도행전 18장 1-8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18장 1-8절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새벽 묵상
옛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데 말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전해져서 오해가 생길 때도 많습니다. 가위는 어떤 천이라도 자를 수 있고
톱은 장작도 쓸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혀는 명예나 평판을 단번에 두 동강이를 낼 수 있고 친구 사이의 우정을 반쪽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가위나 톱은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거나 이가 빠져 제 구실을 할 수가 없지만 혀는 녹이 슬지도 않고, 달아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1:19절에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이라는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상처를 싸매어 줄 때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지만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화하게 되면 가장 무섭고 흉악한 것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말에 대해 어떻게 교훈 하시는지 알아보고 피차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말 하라는 교훈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전도 활동을 할 때 유대인들의 집요한 반대와 박해에 부딪혔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계획적으로 따라다니며 그를 방해하고 괴롭혔습니다
그이유는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믿는 전통과 율법을 무시하고 예수만을 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때는 돌로 쳐서 죽이려 했고, 어떤 때는 감옥에 집어넣기도 했고, 어떤 때는
길에서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에 보면 바울이 복음 전하다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 하였으며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예수님을 믿어야 산다고 전하는 바울의 입을 봉쇄하고 다시는 그런말을 하지 못 하도록 폭력으로 막을 셈이었던 겁니다. 그토록 집요한 유대인의 방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밤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 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 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10절).
예수님께서 말 하라고 재촉 하시기 때문에 바울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던 것이고, 또 내가 너와 함께 있기 때문에 아무도 너를 해할 수 없을 것 이라는 신변 보장까지 해 주시면서 말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잠잠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위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은 그 일을 감당할만한 힘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일을 맡기실 때 해보지도 않고 힘이 없다느니, 능력이 없다느니, 할 줄 모른다고, 핑계를 대거나 회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의 침묵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한 생명을 죽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 하십시오.
찬송해야 할 때 침묵하고, 기도해야 할 때 침묵하며, 입을 열어 전도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회피하는 것이며 범죄행위 입니다. 그러므로 잠잠하지 말고 입을 열어 "예수 믿으라"고 말해야 합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가 잘 살수 있는 영생의 길이 여기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또 누에고치가 입으로 실을 뽑아 좋은 환경을 만들듯이 사람은 자기 입으로 말 하는대로
환경이 조성되고 그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은혜스러운 말, 덕스러운 말, 바른 말을 많이 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 말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잠언 10장 19절에 "말이 많으면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했고, 잠언 17장 27절에는 "말을 아끼라", 또 마태복음 12:36절에는 "무익한 말은 심판을 받으리라", 에베소서 4:29절에는 "무릇 더러운 말을 입밖에도 내지 말라"면서 말의 중요성에 대해 성경은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말하지 않은 것 때문에 해를 받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에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은 거짓말하는 사람은 영원한 유황 불못에 들어간다고 (요한계시록21장8절) 했으며, 또 예수님은 마귀를 가리켜 "거짓말이요 거짓의 아비"(요한복음8장44절)라고 했습니다. 사실적인 말이라도 덕이 되지않고 유익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허물과 단점을 서로 들추어 내는 경쟁을 하는 사람은 서로간에 상처가 생기고 큰 파문이 일어 납니다. 이간질하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고 원수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헐뜯고 비방하므로 불이익을 주는 일은
계획적인 범죄입니다.
말이란 형체가 없고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비수보다 더 날카롭고 흉기보다 더 잔인하게 형제를 괴롭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칼로 받은 상처는 고치기 쉬우나 말로써 받은 상처는 고치기가 어려운 것임을 명심하고 우리는 늘 말을 삼가고 다듬으며 절제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말을 들으라는 교훈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눈도 코도 둘이요 귀도 둘을 만드셨지만 입은 하나를 만드신
이유는 두번 보고 들을 때 한 번만 말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 하기는 더디 하라"(야고보서1장19절), "듣는 자들이 복이 있다"(요한계시록1장3절)고 했습니다.
올바르게 말 하려면 먼저 올바로 들어야 합니다. 듣는 귀가 어두우면 올바르게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들으면 믿음이 자라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로마서10장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한 겁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영혼의 양식에
굶주리고 메말라 죽게 될 겁니다. 설교 시간마다 산만하고 딴전을 피우고 잡념을 가지고
딴 생각을 하고 졸고 앉아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자랄 수가 없습니다. 듣고 안 듣는것,
순종하고 불순종 하는것, 경청 하고 않고는 자유지만 그 결과는 자유가 아니라는 겁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 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입을 열면 기도하고 찬양하고 성경 말씀을 읽고 전도 합시다.
필요 없는 말, 이간질하는 말, 유치한 말, 상처주는 말, 부도덕한 말은 하지 맙시다. 그 때는
오히려 입을 다물고 예수님 말씀만 잘 듣고 순종 합시다. 조그마한 키로 배 전체를 움직여서
목적지를 향하여 가게 하듯이 소망적인 말, 긍정적인 말, 적극적으로 창조적인 말을 하므로
올해 마지막까지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자들이 됩시다.
말은 인격을 보여 줍니다. 성도의 신앙도 말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한 대로
그 열매를 거둡니다. 부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말, 소망의 말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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