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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7.28 | 사도행전 15장 30-41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15장 30-41절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없음)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새벽 묵상


사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늘 갈등하며 결단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갈등을 겪습니다. 일찍 일어 날 것인가? 좀 더 잘것인가? 밥을 많이 먹어야 할까? 조금 먹어야 할까? 어느 옷을 입어야 할까? 누구와 만날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 이렇게 우리는 늘 갈등속에서 결단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참 훌륭한 목회자였던 바울과 바나바가 다툰 내용입니다. 설마 더군다나 바울이 누굽니까? 빌립보서 2:3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한 사람인데, 그런 바울이 다툰다? 그런데 사실입니다. 그것도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본문 39절에 보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그랬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가 겪게 되는 갈등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을 근거로, 이 갈등이란게 무엇인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들의 갈등의 원인을 보면 마가가 그 원인 제공자입니다. 마가는 바나바와는 조카 삼촌 사이입니다. 1차 전도여행에 마가가 바울을 따라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전도 여행중에 바울과 바나바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전도여행을 떠날 때에 바나바가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는 겁니다. 바나바는 다시 기회를 주고 싶었고, 마가의 입장을 변호해 주었지만, 바울은 그런 사람은 같이 일할 사람이 못된다는 겁니다. 결국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심히 다투다가 갈라서 버렸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마가를 데리고 가겠습니까? 떼 놓고 가겠습니까? 바울 편입니까? 바나바 편입니까? 대답을 못하시는 분들은 지금 갈등상황입니다.


첫째로 먼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른 것은 성격 차이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갈등의 원인은 성격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성격이란 각자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개와 고양이는 만나기만 하면 싸웁니다. 왜 싸우는지 아세요? 둘이 딱 만났습니다. 개는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면 고양이는 공격신호로 받아들이고 싸우려고 합니다. 고양이가 반가워서 꼬리를 내리면 개는 위험을 느꼈을 때 취하는 행동으로 여기고, 덤벼드는 겁니다.


이것이 차이의 결과입니다. 결혼합니다. 처음에는 자기와 다른 것이 좋았고, 매력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점차 서로 다른 것을 수용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라온 환경, 생활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갈등의 원인은 일 중심의 사람이냐, 사람 중심의 사람이냐의 차이 입니다.


일 중심의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결과를 중시합니다. 사람 중심의 사람은 과정을 중시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두 사람 중에 바울은 일 중심이고, 바나바는 사람 중심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일 중심의 바울은 전도여행중 도망간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 중심의 바나바는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보다는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 중심은 '옳다, 그르다'가 중요하고, 사람 중심은 '좋다, 싫다'가 중요합니다. 등산을 하더라도 일 중심은 정상까지 가야 등산한 맛이 나고, 사람 중심은 가다가 즐거우면 아무데라도 앉아서 놀면 됩니다.


이렇게 서로간의 중심점이 충돌하는 것을 우리는 '갈등'이라고 하는 겁니다. 갈등은 한자어에서 칡을 의미하는 갈(葛)자와 등나무를 의미하는 등(藤)자가 만나서 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얽히고 섥힌 매우 복잡한 양상이 바로 갈등입니다. 서로 다른 취향, 성격, 의견 등으로 해서 생긴 심리적 불편감과 긴장, 불일치와 충돌, 분쟁으로 발생한 상황을 갈등이라 부르는 겁니다.


세번째로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갈등상황을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를 만들기 위해서 핍박이라는 도구를 쓰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종의 유언과 같은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잘 실행이 안되자, 예루살렘에 있는 믿는 자들에게 핍박을 주셔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원하지는 않지만 핍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복음이 전파되게 하신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그런데 나와 다른 그 사람을 누가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오는 갈등을 하나님께서는 복음증거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은 결과적으로 복음이 전 세계로 전해지는 선한 역사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초대교회에 있어서 바울과 바나바라는 능력있는 두 선교사가 함께 다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혼자서도 훌륭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그들이 나뉘어서 각기 떨어져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는 더 넓은 곳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선교의 확장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훗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빌립보서 1:18절에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제 내가 보니 사람들이 다른 뜻으로 갈라지고, 싸우고 해도 결국 전파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대립으로 보지 말고 보완으로 보아야합니다. 서로 대립하는 상대가 아니라 서로 살리는 상생의 관계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갈등을 겪고 대립되는 듯 보이는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대립이지만, 깊이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이루기 위한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가인도 은혜, 아벨도 은혜, 에서도 은혜, 야곱도 은혜, 바로도 은혜, 모세도 은혜, 가룟 유다도 은혜, 예수도 은혜 (나)도 은혜 (나와 가장 대립하는, 갈등 겪는 사람)도 은혜, 시어머니도 은혜요, 자녀도, 부모님도, 시누이도, 우리 교인들도 모든 것이 은혜요,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이런 갈등을 통해 균형 잡힌 사람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11절에 보면 바울이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일 중심이었지만, 이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자신의 부족을 알고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된 겁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 한 것은, 성경을 보면 바울의 곁을 떠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건 일 중심의 사람에게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며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나를 버렸다고만 말합니다. 갈 길이 달랐다는 표현입니다. 자기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용인해 줄만큼 관용의 사람으로 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갈등이라는 걸림돌을 성숙의 디딤돌로 삼았던 겁니다. 아이가 아프면 성숙해집니다. 앓고 난 후에 부쩍 키가 크던지 말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갈등을 겪지 않으면 성장이 안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갈등을 통해 변화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나와 다투는 겁니다. 밖에 있는 사람과 겨루기보다는 내 안에서 갈등을 겪게 하는 나와 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의 앞길에 놓인 장애물이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갈등하고 계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갈등을 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갈등을 통해 성숙된 삶을 사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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