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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6.29 | 사도행전 5장 1-16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5장 1-16절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새벽 묵상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은혜를 받고 자발적으로 재산을 팔아 공동 생활을 하는 가운데 교회가 더욱 왕성하여 져 갔습니다. 교회가 한참 은혜로울 때에 돌발적인 시험 거리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초대 교회의 교인이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가지고 나가서 헌금 할 때에, 그 재산 중에 얼마를 감추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사도들에게 바쳤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만일에 베드로 사도도 이것을 눈감아 주었더라면 이 죄는 들어 나지 않고 감추어졌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불의한 일을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들이 사도들 앞에 왔을 때에 베드로 사도가 성령을 의지하여 말하기를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하시면서 책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 쓸어져 죽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이렇게 된 것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무서운 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세 시간 쯤 지나서 일어난 일들을 모른채 아내 삽비라가 사도들에게 또 왔습니다. 베드로가 그 아내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라고 물을 때에, 그 아내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예 이 것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 본문 9절에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면서 책망할 때에, 삽비라도 그 자리에 쓸어져 죽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가장 큰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하나님도 능히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139:2에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름을 뜻을 보면, 아나니아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은총”이란 뜻이고, 삽비라는 “사파이어”라는 보석의 뜻이 있습니다. 즉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름 값도 못한 행동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예수를 모르는 불신자였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해서 기독교인이 된 초대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차라리 예수를 몰랐다면 이런 일로 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주님께서 예수 믿는 우리에게 바라는 영적 기준이 있습니다.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한 열매를 맺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겁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은 우리에게 굉장한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충분히 이런 비참한 상황을 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즉 회개의 기회를 먼저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고 물었을 때나, 본문 8절에 삽비라에게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고 물은 것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겁니다. 만약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의 질문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죄를 고백했더라면, 이들의 잘못은 용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런 질문을 한 것은 돈을 더 거두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범죄 사실을 일깨우는 질문이었던 겁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주께 범죄했더라도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주님을 의지하면, 언제든지 용서를 베푸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인 겁니다.


그런데 오늘 이 사건을 읽는 사람들 마음속에 또 한 가지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부부를 다 죽이시며 잔인하게 하셨는가?라는 겁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너무 심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교회를 위해서 자신들의 땅을 팔아 헌금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거짓말 한 것은 잘못이었지만 정상을 충분히 참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차없이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너무 심하신 처사라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 강림으로 태어난 공동체입니다. 사람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공동체가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성장하고 있던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의 특징은 거룩성입니다.


그런데 이 거룩성을 해치는 중대한 사건이 생긴 겁니다.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사건이 생긴 겁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보다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는 불신앙적 사건이고, 불순종의 사건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라고 했습니다. 본문 4절에도 보면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함으로써 신앙공동체의 거룩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는 지나칠 정도로 손을 드신 겁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방치하면 교회가 거룩성을 잃어버리고, 다른 인간 공동체처럼 죄로 물들고, 인간의 욕망으로 범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도 중요하겠지만, 하나님께는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의 거룩성을 지켜야만 모든 교인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0장을 보면 므리바 물 사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 지역을 행군하고 있을 때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를 공격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드린 후에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그것도 두 번이나 내리 쳤습니다. 기적이 일어나 반석에서 물이 나와 백성들이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민수기 20:12를 보면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하시면서, 모세가 인간적인 혈기를 드러낸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거룩성을 훼손했다는 겁니다.


그 사건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시는 모세, 그토록 귀하게 쓰시던 모세까지도 하나님의 거룩성을 훼손하면 용납하지를 못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교회를 거룩하게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교회가 세상의 다른 공동체와 구별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도록 잘 가꾸고 잘 보존하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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