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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6.21 | 사도행전 2장 14-21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2장 14-21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새벽 묵상


오늘 우리가 같이 봉독한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몰려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선포한 말씀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경에 사도행전 2:1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성령께서 임하시자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 반응이 어제 묵상한 마지막 2:12-13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첫째 반응은 깜짝 놀라 “이 어찌 된 일이냐”며 이상하게 여기는 부류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원래 사도들을 볼 때 무식하다고 무시하던 사람들인데, 유창하게 외국어로 설교를 하니까 놀란 겁니다. 둘째 반응은 “조롱하며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여기는 부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들이 술이 취했다고 하는 것이 단순히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방언으로 설교를 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그것은 제자들이 보여주는 기쁨과 행복감 때문이다라는 겁니다. 그들 속에 넘쳐나는 삶의 비전과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말이 없던 사람이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냅니다. 길도 횡단보도가 아닌데 막 걸어 넘어 갑니다. 아무데나 실례를 합니다. 아무하고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합니다. 그리고 “기분 좋다”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술에 취한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술에 취해서 한 행동은 술이 깨면 후회하는 겁니다.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성령충만한 제자들이 가진 기쁨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기쁨이 생겼습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사람들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제자들을 잡아들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와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겁니다. 더구나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만사를 잊어버리고 마냥 좋은 것 처럼, 제자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없는 기쁨이 넘쳤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제자들을 바라본 사람들이 저 사람들 대낮부터 술에 취했다고 조롱한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명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본문 14절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면서 본문 15절에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하는 얘기는 간단합니다. 그것을 의역하자면 “여러분이 우리를 보고 술에 취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몇시입니까? 겨우 3시(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 밖에 안되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술에 취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고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사람들이 술에 취했다고 할 정도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가졌던 그 기쁨과 행복감,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폭발적인 힘과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겁니다. 그 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도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될 겁니다.


먼저, 베드로는 자신과 사도들이 그렇게 변화된 근본적인 힘은 바로 성령의 능력에서 온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16-17절을 보면, 베드로가 자신들의 엄청난 변화에 대해서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고백하기를 “여러분, 우리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열변을 토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달라져서, 이렇게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고, 삶의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물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물질로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면 부자는 다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교육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열심히 가르치면 어느 정도 이성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으로 사람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겁니다. 만일 많이 배워서 사람이 변한다면, 그러면 대학을 졸업한 사람보다는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 더 인격적으로 훌륭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사람들이 사회에 해를 입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 공부해라, 부자되라 하지 말고, 신앙생활 잘해라 하는 것이 자녀를 살리는 길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실 때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능력만이 인간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본문 17절을 보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성령의 역사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비젼이 생겼다는 겁니다.


첫째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예언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예언이 뭡니까? 이 말을 마치 “무엇을 하면 성공할까? 주식이 얼마나 뛰고 내릴까”를 알아 맞추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성령이 임하게 되면, 앞으로 되어 질 일을 바르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예언”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말씀대로 자기의 삶에 적용해서 살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안다는 겁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그렇게 산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느 집사님의 가정에서 교회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병이 들고, 아버지는 하는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신댔어요. 하나님은 모든 병을 다 고치실 수 있잖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말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아이의 말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 아이를 통하여 그 가정에 역사하신 겁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있었을 때 어린 아이가 한 말,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병도 고쳐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잖아요” 이런 말이 바로 예언입니다.


둘째로,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환상”이란 말은 영어로 번역하면 “비젼(Vision)”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상상력이나 직감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 가실 인생의 스케쥴을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과 방향을 바로 보는 겁니다. 이것이 환상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를 보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잠언 29:18절에 그랬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비전을 갖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위치를 지키며,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첫 번째 제목은 성령충만하여 그들도 환상을 보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세 번째로,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꿈은 영원한 미래의 세계, 즉 영원한 우리의 정착지인 천국을 바라 본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노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 때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사람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노인들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치매에 걸리는 사람들을 보면 충격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든지, 아니면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치매에 잘 걸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들일수록 죽음이 가까워지면 더 불안해 한다는 겁니다. 특히 구원의 확신이 없고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자꾸 과거로 되돌리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결국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에 치매가 온다는 겁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나이가 들어서 천국과 영생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죽을 때에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영생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다가 이빨이 다 빠지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한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의 죽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우리는 우리들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은헤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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