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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6.15 | 예레미야애가 4장 11-22절 | 구진모 목사




예레미야애가 4장 11-22절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 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새벽 묵상


어제 묵상한 말씀 가운데 예루살렘과 소돔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죄를 많이 지었다는 점에서 예루살렘과 소돔은 같습니다. 그래서 멸망당했다는 점도 같습니다.


소돔을 멸망시킬 때는 여호와께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도  오늘 본문 11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고 했습니다.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고 했습니다. 이 두 성을 불사른 것도 같습니다.



또 소돔과 예루살렘이 멸망당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먼저 소돔사람들은 그 번영이 오래오래 계속되리라고 믿었습니다. 창세기 19:14절에보면 롯의 사위들도 이 성이 멸망당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도 마찬가지 입니다. 멸망 당하리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예루살렘은 지형적으로 정복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당시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데도 일 년 반이 걸렸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신 이후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데도 삼 년 넘게 걸렸습니다. 또 하나는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으니까, 하나님을 믿는 도시니까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같은 자동차로 먼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떠나기전 무사히 잘 다녀오기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떠납니다. 그럴 때 교인들이 “목사님이 타고 계시니 안전합니다. 걱정없습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참 좋습니다. 



이렇게 멸망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성이 멸망당했다는 점에서도 예루살렘과 소돔은 같습니다.



그럼 멸망당하지 않으리라고 여겼던 예루살렘 성이 왜 멸망당했습니까? 



13절 상반절에 그 이유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다”는 겁니다.  종교인들 때문에 멸망당했다고 말합니다. 여기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와 장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보다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 어느 한 시대가 몰락할 때, 그 몰락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찾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종교의 타락에서 찾게 됩니다. 18세기 영국 사회가 매우 타락했는데 영국의 국교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웨슬리 목사님이 신앙적 개혁운동을 일으켜서 영국을 살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종교인들이 겪는 어려움이 14절 이하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거리거리에서 맹인같이 방황했다고 했고,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져서 아무도 만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일 창피한 모습이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교인들을 보고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이 말은 그 당시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나병환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 당시 나병은 가장 부정한 질병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거룩한 대접을 받아야 할 종교인들이 나병환자 취급을 받습니다. 



레위기 13장을 보면 사람이 나병에 걸렸을 때 “이 사람은 나병이다” 진단해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일을 제사장이 담당했고, 또 나병이 나았을 때도 “이 사람은 깨끗해졌다. 돌아와서 같이 살 수 있다”고  판결하는 것도 제사장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제사장을 보고 “부정하다, 저리 가라”합니다. 거꾸로 되었습니다. 



더 비참한 일이 15절 끝 부분에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종교인들을 보고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고 한 말입니다. 그 당시 유대 민족은 이방인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존재인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습니다.



16절에는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고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이런 종교인들의 가슴 아픈 일들을 볼 때, 참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영광을 가린다는 점이 가슴 아프고 죄송스럽습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 때문에 이 사회가 잘 된다! 우리 나라가 잘 된다!”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오늘 본문 17절에보면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애굽입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침공해 왔을 때 애굽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 때 애굽은 예루살렘을 도와주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는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이미 애굽의 세력이 기울었기 때문이었지만 더 큰 원인은 하나님께서 이미 바벨론을 시켜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없습니다.



우리는 시편 121:1-2절을 이 새벽에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게서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산을 보면서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그 뒤에 계신 분, 온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도움을 구합니다.



운동경기에 보면 ‘막판 뒤집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간증을 하면서 “하나님은 막판 뒤집기를 잘하시는 분이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살아오면서 하나님은 막판 뒤집기를 잘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막판에 크게 도우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밀리고 밀려서 막판까지 왔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뒤집기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노력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령의 도움만을 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막판에 뒤집기로 도와 주시는 겁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서 이 것 한 가지만이라도 기억하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존재에게서 도움을 바라는 것은 헛된일이다”는 이 말씀 하나라도 붙들고 가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 말고/ 다른 존재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 하나님께만 도움을 구하자”  이 사실을 기억하고 돌아가는 이 새벽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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