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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6.14 | 예레미야애가 4장 1-10절 | 구진모 목사




예레미야애가 4장 1-10절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새벽 묵상


예레미야애가서의 각 장에는 슬픈 탄식 가운데서도 기도들이 들어 있습니다.


1장에는 20절부터 “여호와여 보시옵소서”하고 기도가 시작됩니다. 2장에는 역시 20절부터 “여호와여 보시옵소서”하고 기도가 시작됩니다. 3장에서는 55절부터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하고 기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5장은 전체가 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는 4장에는 기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4장을 가장 슬픈 장이라고 하는 겁니다. 



왜 슬픈 장이라고 하느냐 하면, 어떤 형편 속에 있든지 기도할 수 있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할 수 없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겁니다. 기도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슬프고 답답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기도하고 계실 때 그 뒤에서는 가룟 유다의 배신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것이 가장 슬픈


일입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당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겁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마태복음 26:38절에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은 기도로 그 고통, 그 슬픔, 그 고민을 극복하셨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 수 있다면 가장 고통스럽다고 여겨지는 일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고, 가장 슬프다고 여겨지는 일도 슬픈 일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이미 여러 차례 예언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예레미야서 18장에서 이미 토기장이의 비유를 말했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손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19장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백성과 제사장의 지도자들 앞에서 옹기를 깨뜨리면서 하나님께서 이 백성과 이 성읍을 이와 같이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선포한 예언이 성취될 때 예언을 한 사람은 쾌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봐라! 내가 말한 대로 되지 않았느냐!” “내 말 듣지 않더니 이 꼴이 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런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반대로 앞장서서 제일 슬퍼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예루살렘이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은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불순종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그랬습니다. 금의 특징은 변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식을 할 때 예물로 금반지를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금도 빛을 잃습니다.  금과 같이 귀하던 존재들이 질항아리 같은 존재들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할 때는 그 본능도 바꿔버리십니다. 백성들을 돌보지 않으십니다. 그 진노는 무섭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고 했습니다. “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들개보다 못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3절 끝에 “광야의 타조 같도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타조는 우둔해서 알을 낳으면 그것을 품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린다고 합니다.



불순종의 결과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다른 것 생각할 필요 없이 에덴동산을 보십시오. 파라다이스, 낙원인 에덴동산이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때문에 저주의 동산이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십자가를 져라”하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3년 동안의 수고가 모두 물거품이 되었을 겁니다. 3년 동안 가르친 것도 무익한 것이 되었을 겁니다. 만일 그랬다면 예수님처럼 위선자가 없었을 겁니다. 물론 십자가가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의 사명을 완성하셨습니다.



여러분,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쉬지말고 기도에 힘쓰고,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이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아주 욕심 많은 사람을 두고 뭐라고 합니까? “저 사람은 놀부 심보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얼마나 욕심꾸러기 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예레미야는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이 소돔보다 더 죄가 많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보면 예루살렘의 죄악이 얼마나 컸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컴퓨터 시대입니다. 컴퓨터가 얼마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능의 컴퓨터가 나올 때마다 놀라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컴퓨터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욕설바다가 되었습니다. 인신공격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자살 사이트 문제가 심각합니다.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이트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퇴폐문화를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이런 문제에 대해 무방비 상태여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요즘 컴퓨터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지적들이 심각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컴퓨터라는 좋은 선물을 주셨는데 그 축복을 이렇게 악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루살렘 성이 소돔성 보다 더 비참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소돔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두고두고 고통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본문 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족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숯보다 더 검어지고 막대가 같이 말랐으면 알아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본문 10절을 보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고 했습니다.  굶주림 때문에 일어나는 아주 비참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는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낫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죄가 심각해지면 소돔보다 더 비참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시대와 소돔을 비교하는 가운데 깨달음이 있기 바랍니다. 이제는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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