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6.13 | 예레미야애가 3장 55-66절 | 구진모 목사
예레미야애가 3장 55-66절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
새벽 묵상
지금 유다 나라가 겪는 고난, 예레미야 선지자가 겪는 고난을 묵상하고 있지만, 우리 가운데도 참 여러가지 고난을 당하여 힘들어 하시는 분들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고난에 대한 정의를 주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감당치 못할 고난은 없다는 원칙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부모가 다섯살밖에 안된 어린 아들에게 쌀 한 가마니를 어깨 위에 짊어지우겠습니까? 이와 같이 감당할 만한 고난만 주시지 견디지 못할 고난을 결코 주시는 법이 없다는 이 원칙을 꼭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는 원칙입니다.
히브리서 12:5절 중반부터 6절까지 보면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매를 들 때는 자녀가 잘못을 깨닫게 한다든지, 나쁜 버릇을 고친다든지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 때에는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고, 거룩하게 하신다거나, 아니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서 큰 사명을 감당케 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의미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부모가 자기 어린자녀가 잘 놀 때는 멀리서 바라보지만 아이가 위험한 곳이 갈 때는 얼른 가서 품에 안습니다. 더욱 숨을 헐떡이며 몹시 아플 때, 그 옆에 앉아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런 고난의 원칙들을 명심하고 고난 당할 때 결코 의심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56절을 보면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가 망하고, 예루살렘성이 다 무너지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에서 한참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이미 내 기도를 들으셨다”고 하는 겁니다.
본문 58절에도 보면,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지금 억울한 것을 풀어달라고, 나를 살려달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다” 내 생명을 속량하셨다”고 이미 해 주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55절에 보면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예전에 깊은 구덩이에 갇혔다가 구원 받은 일이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고관들이 그를 웅덩이에 가둔적이 있습니다. 구스 사람 에벳멜렉이 히스기야 왕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내서 예레미야는 구조를 받은 적이 있는 이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57절에도 보면,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고 했는데, 이 말씀도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을 때 “하나님, 나는 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고 했을 때, 예레미야 1:8절에 하나님께서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신 것을 말한 것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들으신 줄로 믿고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지 안 들으시는지, 주님께서 들어주실 것인지, 안 들어주실 것인지, 이런 애매한 기도를 드릴 것이 아니라, 이미 들으신 것으로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56절의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라는 이 말을 우리의 일상대화 투로 옮기면 “듣고도 못 들은 척 하지 마세요” 하는 겁니다.
58절에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하는 것도 “주님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 생명을 구원해 주실 줄로 습니다” 는 강렬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하실 때 주님께서 이미 들으신 것으로 믿고, 주님께서 이미 이뤄주실 것으로 믿고, 뜨겁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예레미야는 과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체험, 과거에 위기에서 구조 받은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체험이 예레미야로 하여금 오늘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리게 한 겁니다.
“과거에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민 초기에 그 어려운 일들도 해결해 주신 하나님, 지금 만난 이런 어려움도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니 이미 들으신 줄 믿습니다. 이미 이루어 주신 줄 믿습니다”고 기도하시는 오늘 새벽이 되기시를 바랍니다.
또 한가지 오늘 본문에서 생각해 볼 것은, 예레미야가 본문 64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65절에는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라고 했습니다. 또 66절에는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왜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갚아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원수는 바벨론을 말합니다. 그 원수를 하나님께서 갚아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바벨론은 너무나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자기 손으로 원수를 갚을 능력이 안되니 하나님께 갚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도리입니다.
모세도 세상을 떠나기전 마지막 설교에서, 신명기 32:35절을 보면,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즉, 원수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로마서 12: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 하심에 맡기라”고 했습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성도가 꼭 가져야 할 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나라 깡패 역사에서 유명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시라소니라는 별명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신의주 어느 교회 장로의 아들인데 아버지가 집의 재물을 교회에
다 바치면서 교회 일을 하는 것에 반발해서 집을 나가서 불량배 생활을 했습니다.
자유당 때 이정재라는 사람이 정부의 비호를 받으면서 주먹 세계를 지배했는데 시라소니가 방해가 되니까 어느 날 습격을 해서 많은 상처를 입혔습니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병원까지 쫓아와서 다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퇴원한 시라소니는 원수를 갚는다고 무기를 지니고 다니면서 기회를 보았습니다. 이 때 그의 아버지 장로를 잘 아는 목사님이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권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5·16이 나고 이 때 이정재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시라소니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자기에게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권하던 목사님을 찾아가 품고 다니던 무기를 내 놓고,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때 장례를 집례한 목사님이 “내가 장례를 집례하면서 시신을 수없이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평안하고 깨끗한 모습은 처음 본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 손으로 원수를 갚지 못해 원한을 품은 채로 죽었다면 이런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겁니다. 여러분,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세요.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66절 끝에 “여호와의 하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하늘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곳, 평화로운 곳, 이런 뜻들이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이, 삶이 천국이 되셔서, 남은 삶이 평안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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