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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5.31| 사무엘하 24장 15-25절 | 구진모 목사




사무엘하 24장 15-25절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새벽 묵상


어제 묵상중에 다윗이 말년에 인구조사 한 것을 좋게 여기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통해 세가지 징계를 말씀하시면서 다윗에게 한가지를 선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세가지가  1) 칠년 동안 이스라엘에 기근이 드는 징계이고,  2) 석달 동안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도망하게 되는 징계이고,  3) 온 땅에 삼일동안 전염병을 내리는 징계입니다. 



사실 이 세가지 징계가 다 쉽지 않은 징계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중 세번째 징계를 택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다윗 생각에 제일 짧은 징계를 택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겁니다. 아마 저 같아도 제일 짧은 징계를 택했을 겁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징계로 내리셨는데 삼일 동안 전염병으로 무려 7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엄청난 재앙입니다. 전쟁을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청난 징계를 내리신 이유는?



1) 하나님께서 징계를 작정하시면 그게 얼마나 아픈 것인지 철저하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2) 다윗이 자랑하고 심었던 군사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도 철저하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 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징계 중에 다윗이 다시 한 번 철저하게 회개했다는 겁니다. 그 회개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1) 다윗이 세 가지 징계 중에서 세 번째 징계를 택한 진짜 이유는 사실 그 징계의 날이 짧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삼하24:14절 후반부를 보면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2) 또 징계를 받으면서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을 보면서 다윗이 기도하기를 17절을 보면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라고 했습니다. 



내가 범죄 했는데 왜 이 양무리를 칩니까? 그러면서 자신을 직접 징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자신이 받기를 원했던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다윗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이 전염병이 발할 때 16절을 보면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면 삼 일 만에 이스라엘은 멸망할 뻔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왜 징계를 그만두게 하셨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하였습니까?  



요나 4:2절에 중반부에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신실하심이 징계를 멈추게 하셨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예배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리하심때문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구조사를 할 때만 해도 다윗은 전형적인 군주의 모습이었습니다.  요압을 비롯한 충신들의  충언에도 불구하고 밀어 부칠만큼 강력한 왕의 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실수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자로 돌아온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구 조사하라고 한 사람이 내가 아닙니까?  이 양들은 내 명령에 따른 것 뿐입니다”며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며  “이 재앙이 백성들에게 가지 않기를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속에서, 다윗이 다시  양을 돌보는 목자의 모습으로 돌아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다윗의 매력입니다. 다윗이 범죄 하지 않은 것보다, 그가 범죄하였지만 회개했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좋아하신 이유입니다. 다윗은 이제 상한 심령이 되었습니다. 



본문 18절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다윗이 제사를 드리면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제단을 쌓기 전에 하나님은 용서하셨다는 겁니다. 다만 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은 용서가 이미 이루어졌음에 대한 확신을 주시기 위한 단지 싸인이었던 겁니다.   



다윗이 쓸데없이 인구조사를 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7만명의 백성이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비극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마침 선지자 '갓'이 다윗 왕에게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권고했습니다.  



다윗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다윗이 아라우나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타작마당을 사겟으니 팔라고 했습니다.  아라우나는 자기 땅이 성스러운 성소로 쓰여지게 된 것이 고마운데다가 더구나 왕께서 자기 땅이 필요하시다니 너무 감격하여 그냥 왕에게 바치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드릴 소와 땔나무와 마당질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자기의 희생의 제물을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열납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그 땅에서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값이 지불되지 않은 예배는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희생이 지불된 예배를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겁니다. 



본문 25절에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열납되는 예배는 우리의 희생의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희생예배란 '예배를 위해서 나의 것(권리)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양을 드린 예배는 희생예배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려면 세 가지가 희생되어야 합니다. 몸과 시간과 물질입니다.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몸을 바치고  몸이 움직여야 합니다. 주일날 어딜 가십니까? 무슨 일로 분주합니까? 왜 예배를 준비하지 않습니까? 밥 웨버(Bob Webber)는 “예배는 동사다”(worship is a verb)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는 관찰이 아니라 참여입니다.     



우리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오늘 날 인간들의 가장 귀중한 재산은 시간입니다.  모든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치원생들도 바쁘답니다. 이 바쁜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교회갈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 기도시간, 전도시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모두가 귀중한 나의 시간을 포기해야 드려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친구중에도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굽니까?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장 귀하고 친한 친구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에게 친구로 사귀고 싶어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나와함께 보내자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주님은 다 가지고 계신데 유독 시간만은 없으시다” 이 말은 우리가 시간을 많이 내야 주님도 시간을 내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눅7:36-50에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트려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제자들은 비웃었지만 그녀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너무 크기에 이보다 더 큰 것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아들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단을 쌓고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아들을 죽이려는 순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을까?  그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을까? 그것도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로 드릴 수 있을까?를 바라보고 계셨던 겁니다. 아브라함은 예배에 성공했습니다. 온전한 예배만이 아버지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고 드리는 희생의 예배가 온전한 예배입니다.  그 예배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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