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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3.24 | 사무엘상 26장 13-25절 | 구진모 목사




사무엘상 26장 13-25절


13.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 꼭대기에 서니 거리가 멀더라

14.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이르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브넬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하더라

15.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16. 네가 행한 이 일이 옳지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이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하니

17.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하고

18. 또 이르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19.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사람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20. 그런즉 청하건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 곳에서 이제 나의 피가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21.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

22. 다윗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23.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4.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25.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새벽 묵상


어떤일에나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참가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는 운동경기에서도 사실은 지는 것보다 이기는 것이 기분도 좋은 겁니다. 그러므로 이겨야 하는 겁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탄에 지면 사탄의 종으로 끌려 다니며 불행하게 됩니다. 죄악에 지고 나면 죄의 종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보면 이기고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지고 있는 것 같으나 승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온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시려고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에 침 밷음과 뺨 맞음을 당하시고, 벌거벗기운 몸에 채찍으로 맞으시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시며 운명하시고, 무덤에 장사 지냈을 때, 제사장들이나 바리세인과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이긴 것 같았을겁니다. 



또한 돌에 맞아 온몸에 피가 흘러 죽어 가면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스데반 집사의 최후의 모습은 외형으로 볼 때는 진 것 같았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스데반 집사야 말로 진정한 승리자였습니다. 



우리도 현재 눈앞에 보이는 얕은 승리가 아니라 진정한 승리자,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서 당당하고도 진실한 승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무엘상 24장에도 보면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낸 다윗을 사울왕이 죽이려고 집요하게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엔게디 굴속에서도 사울왕의 옷자락만을 잘랐고, 사울왕이 하길라산 수풀 요새에 진을 치고 잠을 자고 있을 때도 다윗과 아비세가 들어가 사울왕의 창과 물병만 갖고 나왔습니다. 이 때도 다윗의 부하 아비세가 “다윗이여 두번 찌를 것도 없나이다” 할 때 다윗은 그가 죽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범죄치 아니하겠다” 하여 살려주었습니다. 



이 때 사울은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닫고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목동이었던 다윗은 왕이 되었고, 그 후손 대대로 왕권을 이어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 중 예수 그리스도 께서 오신 것을 보면, 다윗은 영.육간에 큰 복을 받은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윗이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로 다윗은 주의 사랑을 끝까지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  사울의 이 고백은 다윗의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삼상 24:17에서는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저주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을 베푼 결과입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참된 승리를 거두기 위한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황금율이라고 하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 는 말씀은 사랑의 실천을 먼저 하라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치면 그는 더 큰 원수가 되는 법입니다. 그러나 용서하면 원수가 친구로 변할 수 있습니다. 친다고 하는 것은 원수를 내가 갚는다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것은 원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남미의 한 소녀가 폭도들에 의해서 팔이 잘리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 고통당한 소녀는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간 어느날 한 사람의 흉한 몰골을 한 남자가 자기 집 문앞에 왔습니다. 첫눈에 자기의 팔을 자른 원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어서 그를 영접 하게 했습니다. 그에게 빵과 우유를 주었습니다. 쉬게 해 주었습니다. 한참 뒤에 그 여자가 원수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린 팔을 보여 주었습니다. 원수는 직감적으로 그 사람이 바로 자기가 팔을 자른 여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원수인 나를 어떻게 이렇게 대해 주십니까?”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사랑으로 지금 복수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원수를 가장 잘 복수하는 방법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잘해주는 겁니다. 



칠 수 있을 때 치지 않는 것이 용서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 실 때 예수님은 자신을  못박고, 욕하는 수많은 사람을 바라보시며 “주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지금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치기 위해서 천사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용서하며 기도했던 겁니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저들의 죄를 저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여러분, 우리는 나의 말로 원수를 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행동으로 원수를 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치지 말고 그를 용서하면 원수는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행동으로 원수를 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 원수를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영어로 용서를 forgive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주장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원수 앞에서 내 생각과 내 기분과 내 감정을 포기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 집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원수를 맡길 때, 원수는 해결이 될 겁니다. 



로마서12:20절을 보면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원수를 사랑으로 용납하고 그를 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용광로가 되어서 원수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녹이고, 그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사랑으로 세상의 미움을 녹이십시다. 용서함으로 원수를 친구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복된 능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원수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하는 방법입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6:27-28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했습니다. 즉 축복하는 것이이 가장 적극적으로 원수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이제 봄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봄 바람은 눈을 녹이며 얼음을 녹일 겁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미움과 증오를 녹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봄 바람이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자, 싫어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마음에 남아있는 괴로운 얼굴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들을 위하여 축복 하십시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원수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이 복을 받아야 나도 복을 받는 겁니다. 



이렇게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명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사울왕이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24절에도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란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귀한 것처럼 남의 생명도 귀하게 여겼던 겁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두의 생명은 귀한 겁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쉽게 생명을 빼앗거나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도 때로는 이러다가 죽는 것 아닐까 그래서 블레셋으로 도망가자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늘 상대방의 생명도, 자신의 생명도 귀하게 여겼던 겁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인은 육신의 생명도 귀하지만 죄악으로 지옥 갈 백성의 생명을 살리는 전도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가장 기뻐하시는 일임을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기회주의자 되어 얕은 생각과 방법으로 자기 좋은대로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승리한 것 같이 보이지만 결과는 언제나 실패입니다. 조금 손해보는 것 같고 미련스럽게 보이고, 우둔한 것 같아도, 주의 사랑을 끝까지 실천하며사십시오. 그리고, 내 생각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 제일 중심주의로 사십시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계속할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기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순절 새벽 공동기도









사순절 새벽 공동기도



1.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을 더욱 알고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2. 끝나지 않은 코로나가 힘을 잃고 멈추게 해 주옵소서! 


3. 사순절에 온전히 회개하고, 거듭남으로 온전히 주님을 닮아가게 해 주옵소서! 


4. 가정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며 치유와 평안을 느끼게 하옵소서!


5. 혼란스런 상황속에서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6.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모든 병자들이 치유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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