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3.23 | 사무엘상 26장 1-12절 | 구진모 목사
사무엘상 26장 1-12절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새벽 묵상
어떤 스님이 한 기독교인을 만났습니다. 아주 열심으로 불교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기독교가 불교보다는 한 수 아래 종교 같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우리 불교에는 아예 원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자 이 기독교인이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 그러면 스님은 지금까지 살면서 미웠던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셨습니까? 혹은 지금도 싫어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까?" "물론 미워하는 사람이야 있지요." "예. 스님, 성경에서는 싫어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을 원수라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스님이 그만 할 말이 없어졌었다고 합니다.
내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 이런 사람도 원수의 반열에 다 집어넣는다고 할 때 우리에게는 몇 명의 원수가 있습니까? 아마 틀림없이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원수는 다 가지고 계실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는 도중 아주 미운 사람이 하나 생겼습니다. 사사건건 자기를 욕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밉던지 마침 가룟유다의 얼굴을 그리려고 하는데 누구로 모델을 삼을까 생각을 하다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 자기를 반대하는 그 사람을 가룟유다의 얼굴로 삼아서 그렸습니다. 속이 시원했습니다. 자자손손이 복수를 하게 되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드디어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영감이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합니다. 묵상을 합니다. 그 때 중요한 원리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미워하던 그 사람, 자기 마음속에 깊이 증오하고 있던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의 관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영감까지 막고 있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을 지웠습니다. 가룟유다의 얼굴을 지우고 다시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하자 아주 아름다운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원수에 달렸습니다.
내게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할 것이고,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은 기뻐받지 않으실 겁니다. 내게 미움이 있다면 이 미움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들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해 주실 겁니다. 내가 원수를 귀하게 여기는 만큼 하나님도 나를 귀하게 여겨 주실 겁니다. 모든 종류의 원수는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주신 겁니다.
오늘의 말씀은 다윗의 삶을 통해서 일어난 몇 가지의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해서 다윗은 자신을 괴롭게 하며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사울 왕을 용서하는가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다윗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분노할 줄을 알고, 미워할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이라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그는 계속 용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지금의 우리와 비교해 가면서 다윗이 용서할 줄을 아는 사람이 된 그 이유를 알아 보려고 합니다.
사울과 다윗의 인연은 언제 맺어 졌을까? 삼상16:14이하에 보면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임하면서 사울을 번뇌케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사울의 신하들이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임할 때에 수금 타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금을 타고 노래를 하게 함으로써 악신을 물리치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마음과 뇌를 번뇌케 하는 일을 당하게 될 때 찬송을 많이 불러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어쨋든 사울과 다윗의 만남은 사울의 병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에서 출발이 되어졌습니다.
두 번째의 만남은 삼상17장31절 이하에 나오는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다윗이라는 양치는 소년에 의해서 골리앗은 죽고,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마침내 사울 왕은 다윗을 군대의 장으로 삼았고, 또한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는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더한 우정을 가진 친구가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사울 왕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말미암아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울 왕과 다윗은 남다른 인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인기가 백성들 가운데 높아지는 것 때문에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엔게디 황무지에 숨어 있을 때에 누군가 이것을 사울 왕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군사 삼천명을 이끌고 다윗을 포위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자신이 숨어 있는 굴안으로 들어온 사울을 죽이지 않고 겉옷을 베어 나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쉽게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사울 왕은 오늘 본문에서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쫓습니다. 사울 왕은 하길라산 길가에 진을 치고, 진 가운데 누워 자고 있을 때, 살그머니 다윗과 아비새가 진으로 내려와서 잠에 빠진 사울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도 사울왕의 물병과 창만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이 뭡니까? 어떻게 해서 다윗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가 가진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다윗의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의 삶 자체가 오직 ‘하나님 중심’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리고 행하였습니다. 사울 왕을 살려주는 것도, 그리고 그를 용서하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 중심으로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중심의 삶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삶을 사는 겁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니까 다윗은 사울을 죽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중심인 사람은 정치적인 출세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겁니다.
사무엘상 24:4절에보면, “다윗이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 라고 하면서 사울을 죽이기를 강력하게 권했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여러사람의 의견이었기에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요? 다윗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그외에 다른 것도 하나님께서 중심에 판단하시고, 결정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내일 묵상할 말씀이지만, 사무엘상 26:19절을 보면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그랬습니다. 이 말은 사울왕을 격동시켜 자신을 죽이려는 일이 여호와의 뜻이라면 여호와께 제물을 드려서라도 그 뜻을 받들어야한다는 겁니다. 즉, 자신이 쫓김을 당하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신은 죽음도 기꺼이 받아 들이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울왕과 다윗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다윗이 몇번이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살려 주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 자체가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이라고 알게 되었을 때 그 일들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은 죽이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중심을 두고 사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다윗 처럼 생각하고, 다윗과 같은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순절 새벽 공동기도
1.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을 더욱 알고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2. 끝나지 않은 코로나가 힘을 잃고 멈추게 해 주옵소서!
3. 사순절에 온전히 회개하고, 거듭남으로 온전히 주님을 닮아가게 해 주옵소서!
4. 가정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며 치유와 평안을 느끼게 하옵소서!
5. 혼란스런 상황속에서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6.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모든 병자들이 치유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