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3.09 | 사무엘상 20장 24-34절 | 구진모 목사




사무엘상 20장 24-34절


24.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초하루가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25.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요나단은 서 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있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더라

26.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27. 이튿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니

28.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29. 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30.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32.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33.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34. 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떠나고 그 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새벽 묵상


20:1절을 보면 다윗은 사무엘의 곁을 떠나 요나단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가능하다면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사울과 화해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호소하듯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이 20:2절에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는 행하지 아니하나니 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이 요나단의 대답은 다윗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가 최근에 바뀐 것을 그가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에게 무엇이든지 필요한 일을 도와 주겠다고 자신 있게 약속을 합니다. 20:4절을 보면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그러자 다윗은 자기 말이 절대로 옳다는 것을 맹세까지 해 가면서 다짐했습니다. (삼상20:3) "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 그러자 요나단은 다윗에게 무엇이든 필요한 일을 도와주겠다고 자신 있게 약속했습니다(20:2-4).



요나단은 화살을 쏘아서 남몰래 신호를 보내어 다윗에 대한 사울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겠다는 실제적인 제안도 했습니다(20:18-23).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월삭에 나타나지 않자, 사울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참석하지 못한 데에는 어떤 사고가 있어서 못왔을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축제 둘째 날에 사울은 다윗이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보고 그가 어디에 있느냐고 요나단에게 묻자, 요나단은 다윗이 요구한 대로 다윗이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을 자기가 허락했다고 말하자, 사울은  다윗을 사형에 처할 테니 그를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은 본문 32절에 “다윗을 죽일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라고 아버지 사울에게 따집니다. 그리자 사울이 아들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했지만, 가까스로 피했고 이 때 요나단도 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나와서 친구 다윗을 위해서 금식하며 슬퍼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가장 우정이 깊은 친구를 뽑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다윗고 요나단일 겁니다. 그들의 우정을 보면 눈물 겹습니다. 요즘같은 삭막한 세상에서 이런 우정을 나눌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데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이 말은 내가 먼저 형제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랑하라는 말인데, 여기에 대한 아주 좋은 모델이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범죄하여 죄와 사망속에 갇혀 있을때도 우리에게 죄를 묻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 주심으로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코자 노력하셨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노력이셨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우리와 교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기 전 먼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와 언약을 맺으신 것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의 정신”으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섬김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좋은 친구란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처럼 내가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과 요나단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서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먼저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는데, 이처럼 좋은 친구란 내가 주장하기 보다는 먼저 친구의 어려움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부터 출발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0절에 보면,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했는데, 이처럼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내가 기다려도 안되고, 그렇다고 혼자 앞서도 안됩니다. 서로해야 합니다.  서로가 다가가서 먼저 관심을 보이시고 서로 우정을 만들어 나간다면 다윗과 요나단 못지 않게 좋은 우정의 관계를 만들어 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좋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려면, 잘 들어주는 겁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사랑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데 있습니다. 여기에 현대인들의 고독이 있습니다. 마음 놓고 자신의 처지나 형편을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준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사람을 이해 한다는 뜻인데, 놀랍게도 현대인들은 그렇게 말하기는 좋아하면서도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에는 왜그렇게 인색한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1:19절에도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참으로 지혜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세명이 있는데, 그 중 한 친구는 워낙 언변도 부족할뿐만 아니라, 말이 없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보면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 사람들의 말에 너무 재미있게 들어 준다는 겁니다. 그냥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재미있는 표정으로 진짜 재미있게 듣습니다. 그러니까 이 친구를 다 좋아 합니다. 그러니까 어려운 일이 생기고 문제가 있으면 이 친구를 찾아 갑니다. 그 친구에게 말로 다 풀어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자기 말을 하고 싶어서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지를 못합니다. 이제는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십시오. 우리가 교회 안, 밖에서 인간 관계를 갖을 때, 꼭 지켜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이 언어는 절대로 가벼워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말이란 날아 다니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그 말이 상대방에게 전달될 때는 상황과 배경이 무시된채 전해지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지 모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인간관계속에서 좋은 친구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말 때문에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어렵게 터놓은 비밀 같은 이야기를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게 무심코 던진 결과로 인해서 상대방이 아파하고, 그래서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 속에 더 이상 깊은 우정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종종봅니다. 



사람들은 큰 것에 감동 받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일, 사소한 일에 쉽게 감동받고 감격하는 겁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형제와 자매들에게 먼저 찾아가서 친구가 되어주고, 여러분의 관심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다윗과 요나단 같은 좋은 친구로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