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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2.02 | 사무엘상 6장 13-21절 | 구진모 목사




사무엘상 6장 13-21절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1.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새벽 묵상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나라 중에 블레셋이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주위에서는 가장 강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블레셋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계속 지기만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하다 못해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블레셋의 손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법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습니다.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사람들은 빼앗은 법궤를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 신당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가서 보니까 큰 다곤 신상이 엎어져서 목뼈가 부러지고 허리가 잘라지고 팔다리가 부러져 박살나 있었습니다. 또 그 뿐 아니라 법궤를 갖다 놓은 블레셋의 '아스돗'이라는 마을에는 온역이 번져서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스돗 사람들은 너무 급한 나머지 하나님의 법궤를 '가드'라는 마을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가드에도 역시 무서운 독종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법궤는 다시 '에돔'이라는 마을로 옮겨졌습니다. 거기에도 무서운 재앙이 임하여 많은 사람들이 독종으로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겁을 먹은 블레셋 방백들이 모여서 의논했습니다. 이 심상치 않은 일이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린 재앙인지 아니면 우연한 일로 생긴 것인지흑백을 가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갓 새끼를 뗀 암소 두 마리를 구해 새 수레를 메게하고, 그 위에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가게 해서, 소들이 곧장 가면 정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내린 재앙이고, 소가 좌우로 치우치면서 그 길로 가지 아니하면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으로 하기로 결정을했습니다.



이렇게 결정을 하고 수레를 만들어서 법궤를 싣고 갓 젖뗀 두 암소들로 끌고 벧세메스로 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소는 좌우로 돌아보지도 않고 곧장 벧세메스까지 갔습니다.  벧세메스까지의 거리는 꽤 먼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 먼 거리를 이 소는 길도 모르고, 또한 좋은 길도 아니고, 그리고 갓 태어난 새끼를 뗀 암소인데도 불구하고 법궤를 실은 수레를 메고 곧장 블레셋에서 벧세메스까지 온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과 내용입니다.



그러면 벧세메스로 향해 가는 이 소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사명을 위해서 특별히 선택받은 소 입니다.



어떻게 법궤를 메웠든지 이 소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메워졌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하나님의 사명을 받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 사는데 사명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아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사명’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파견한 자, 하나님의 뜻이 임한 자, 하나님의 대사'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파견자가 되는 겁니다.



이 말은 사명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실 때 감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명을 감당할 때 두려워 하거나 걱장하지 말고 기쁨으로 감당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오늘 두 암소를 볼 때 자신들의 감정을 억제하고 사명을 위해서 간 소입니다.



비록 소이지만 지금 갓 새끼를 낳은 암소로서 사람으로 말하면 산모와 같습니다. 송아지가 '음매, 음매'하고 부르는데 그것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가는 소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식에 대한 감정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성공적으로 할 사람은 인정이나 감정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분노에 대한 감정을 억제할 줄 알아야 됩니다. 짐승에 불과한 소이지만 갓 태어난 새끼를 떼어 낸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소는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분노의 감정도 억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도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분노가 있는 곳에는 절대로 성령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화를 내면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는 겁니다.



셋째,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한 소 입니다.



비록 소이지만 블레셋 방백들은 이 소가 곧장 가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고, 소가 뒤돌아보고 치우치면 자기 나라의 재앙이 위험한 독종 재앙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가 좌우로 치우치지도 않습니다. 뒤돌아보지도 않습니다. 도중에 중단하지도 않습니다. 마지막 지점인 이스라엘 벧세메스까지 도착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했을 겁니다. 그 후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안 후에 이스라엘에게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점점 거칠어져 갑니다. 험악해져 갑니다. 어두워져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때에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의 죽어 가는 수 많은 영혼들에게 생명줄을 던져야 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됩니다.



넷째,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소 입니다.



비록 소 이지만 그 법궤를 메고 마지막 도착했을 때 여물이라도 많이 주고, 편히 쉬게 해 주어도 시원찮은데, 오히려 법궤를 메고 온 소를 잡아서서, 끌고 온 수레를 장작으로  삼아,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이것이 사명자의 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어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겁니다. 우리는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멋있는 삶을 살아야 되고, 멋있는 죽음을 죽어야 됩니다. 주를 위해서 최고로 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를 위하여 최고의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겁니다.



로마서 12:1에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벧세메스로 향해 가는 소의 네 가지 교훈을 우리 모두의 생활의 교훈으로 삼아 승리하시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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