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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1.19 | 빌립보서 4장 8-13절 | 구진모 목사




빌립보서 4장 8-13절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 두가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깊히 생각할 것이 무엇인가? 두번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족하는 삶의 비결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본문 8절을 보면 무엇에든지 참된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 안에 이단적인 거짓 사상들이 많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그 길로 가면 분명히 불행해 질 수밖에 없는데 그 길을 선택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속임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상에 세뇌가 되어서 바울이 힘써 전했던 복음을 버리고 그 잘못된 사상을 따르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서 그러한 것들을 피하고 참된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겁니다. 



2) 무엇에든지 경건을 생각 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경박하고, 천박한 것들이면서 쉽게 매력을 느끼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잠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삶을 황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천박한 삶으로 변질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매력이 있다고 해서 다 호기심을 갖고 받아드릴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경건한 것이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3) 무엇에든지 옳은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선택할 때 가급적이면 쾌락적인 것, 편안한 것, 안일하고, 쉬운 길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엇에든지 옳으며”라는 말은 비록 쾌락, 편안함이 없는 쉬운 길이 아니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이며 책임인가를 먼저 깊이 생각하라는 겁니다. 



4) 정결한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비겁하고, 부패하고, 음란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럽히고 부패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도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그랬습니다. 이 말은 마음이 깨끗지 못할 때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보게 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무엇에든지 정결하고, 깨끗한 것을 생각하라는 겁니다. 



5) 사랑 받을만한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맺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체적으로 어떤 공동체든지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항상 갈등, 분노, 적대감 같은 감정에 사로 잡혀 살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그런 감정이 아닌 사랑, 용서, 인내, 긍휼히 여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야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인정해 준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며 살라는 겁니다. 



6) 칭찬 받을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들 가운데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말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에게 치유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7)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순한 것, 타락시키는 것이 아닌, 고상하고, 정중하고, 위엄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덕은 공동체의 치유와 화합을 가져옵니다. 반면 덕스럽지 못한 것은 분열과 상처를 남깁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8절에서 삶의 가치를 말하면서 단지 생각하는 것으로만 끝내서는 안되며 거기에 수반되는 행동이 있어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들도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 했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믿음인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는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사람도 단정하게 꾸민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위에 말한 것처럼 단정하게 잘 꾸미고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만족한 삶의 비결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1-12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는 말은 어떤 환경이 든지 자신을 주장하지도 지배하지도 못한다는 말 입니다.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배고픔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를 좌절시키지 못하고, 또 한 편 배부르고 풍부한 것이,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만족한 생활의 비결을 한 마디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어떤 사람은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에서 “나”를 지 나치게 강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나”를 지나치게 무시해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바울의 고백을 보면 바울에게는 끊임 없이 능력과 힘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바울에게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주님을 찾을 때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이길 힘을, 극복할 힘을, 살 힘을 공급해 주실 겁니다.  



우리들의 삶의 상황은 언제든지 ,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머리털까지 세실 정도로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나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다윗왕은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기록한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즉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만족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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