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1.13 | 빌립보서 2장 1-11절 | 구진모 목사




빌립보서 2장 1-11절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새벽 묵상


가정의 아름다움이란 집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소유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간의 아름다운 교제가 있을 때 그 가정을 아름답다 하는 겁니다. 교회의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요?



첫째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겁니다. 



사도신경에 보면,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 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모임이 이익 추구의 모임이 아니라, “거룩한 공회”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 는 이익 추구의 목적으로  모인 공동체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등록하실 때 “내가 이 교회 나가면 장사에 도움이 되겠구나” 라든지, 교회를 통하여 무슨 자신의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나오는 것은 잘못된 일이란 겁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회”임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서”거룩”이란 말은 “구별된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란 세상의 어떤 단체들과는 구별된 모임이란 뜻입니다. 어떻게 구별되었습니까? 성도가 서로 교통하게 구별되었다는 겁니다.



여기서도 “교통”이란 말은 영어로는 Communication 인데, 이 단어의 접두어 “Com” 이란 ‘함께’ 또는 ‘같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통”이란 말에는 ‘무엇 무엇을 같이 진다’ ‘무엇 무엇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서로 서로 함께 짐을 지고, 함께 기쁨과 고통을 나누고, 함께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런 모습들이 교회를 교회답게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성도간에 함께 하는 교통이(communication) 더욱 많아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잠은 잠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잠들지만 교통은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려면 부단히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 서로 교통이 이루어지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성격이 내성적이라 같이 오래 교회를 다녔으면서도 교제가 없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좀더 누구에게든지, 교회일이든지,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아름다운 교회는 본문 2절에 보니까?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그랬습니다. 같은 마음, 같은 사랑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려면 추구하는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그럼 어디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목적을 두어야 하는 겁니다. 



가만히 보면 교회 안에서도 같이 믿음 생활은 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다 같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 특별히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서로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한결같이 “말씀대로 믿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서로 반목하는 것을 봅니다. 



“말씀대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말씀대로 믿는다”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사는 것을 뜻합니다.



“말씀대로 믿는다”는  것은 사랑의 대상이 같아야 합니다.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같은 마음, 같은 사랑을 가지려면 결국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랬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스스로 낮춘 마음입니다. 강제로 낮아진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비어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런 마음입니다. 



세번째로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은 본문 3절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랬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으로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겁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교인들을 보면 어느정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이 하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일하는 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교인은 자신의 하는 일을 들어내려고, 큰 소리내고, 다투는 사람들을 봅니다. 물론 잘 하려고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유독 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맡기면 자기 생각대로만 하려고 하고, 그래서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 사람을 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거룩한 공회인 교회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남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서로 서로 함께 하는 겁니다. 



성경에는 “서로 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서로 문안 하라, '서로 화목 하라, '서로 발을 씻기라,  서로 용납 하라, 서로 돌아 보라, '서로 짐을 지라”고 했습니다. 서로 웃고, 서로 우는 사랑의 관계처럼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회다움이란 서로를 존중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각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가령 누가 교회를 위하여 큰 봉사를 했다고 하면, 돈이 있으니까 그렇지, 또 헌금을 남보다 많이 했으면, 앞으로 권사나 장로가 되려고 그러는가 보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들이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남을 칭찬해 주는 은사들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도 수고한 사람들의 수고를 알아주라고 하였습니다.



입안에 있는 이는 당하고 단단해서 강한 것 같지만, 물렁 거리는 약한 혀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혀는 이가 깨물어서 피가 나고 아플때도 있지만, 이빨처럼 썩어서 구멍이 나거나 땜질을 하는 일은 없습니다. 나면서 죽을 때까지 혀는 그대로 있습니다. 누가 참된 강자입니까? 겸손한 사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여러분! 이제 우리들 스스로를 반성하고, 교회를 교회다움으로 이어지도록 서로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같은 생각, 같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Comentário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