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11.18 | 창세기 48장 12-22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48장 12-22절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의 주요 내용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할 때 야곱이 오른손으로는 차남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손을 얻고, 왼손은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손을 얻고 축복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자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손을 옮기려 했지만 야곱이 허락지 않으면서 한 말이 본문 19절 말씀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두번씩 강조하면서 말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은 야곱이 당연히 오른손은 큰 아들, 왼손은 작은 아들에게 얻고 축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야곱은 왜 다 알고 있으면서 손을 바꾸어서 축복하고 있는 걸까요?
“나도 다 안다”는 뜻에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 있는 겁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대로 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이러한 사실을 배우는데 한 평생이 걸렸습니다. 야곱의 일생을 보면 처음부터 그는 꾀를 써서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 그 때 야곱 생각은 장자의 축복을 받기만 하면 장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서 깨달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야곱의 결혼문제만 보더라도,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여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겨 아내로 취했는데, 그 사람이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사랑한 여인을 소원하였지만, 인생은 소원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때 배웠을 겁니다.
그 다음에 또 열 두 아들 중 열 한 번째 아들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적어도 130년동안 야곱의 생각 속에서 죽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할 수 있고, 함께 있고 싶다고 해서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때 또 배웠을 겁니다.
또 야곱의 나이 130세가 되었을 때에 가나안 땅에서 안정되게 살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말년은 고향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내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기근을 주셔서 고통받게 하십니다. 야곱에게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초청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애굽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그 때 또 한 번 깨닫습니다. 인생이란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알고, 그제서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겁니다.
자신은 오른손을 들어 큰 손자를 축복하려 했습니다만 마음속에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야곱은 바로 '알았습니다' 하고 손을 어긋나게 옮긴 겁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손을 옮기려하자 야곱은 '아니다. 나도 안다' 라고 한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길로 이끄시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손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계획하고 소원하는 일이 여러분 뜻대로 되던가요? 뜻대로 되지 않아서 좌절하고 실망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말들을 하는 겁니다.
우리 마음대로 제비를 뽑지만 그것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야곱이 안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야곱이 모든 축복을 마친 후에 자손들의 미래를 21절의 말씀으로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이제는 현재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닥쳐올 미래의 일까지 하나님 뜻을 알고 예언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나도 안다”는 말에는 또한 장래의 일에 대해서도 안다는 뜻이 있는 겁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길이 이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또한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길을 보여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은 이 것을 압니다. 과거와 현재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미래에도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흐름을 알 수 있는 겁니다.
창세기 48장을 관심있게 보신 분은 좀 특이한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것이 뭔가하면, 야곱을 계속해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50년 전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야곱이라고 불리어지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변화되지 않는 삶을 살 때는 야곱이라고 부르고 있고, 변화된 삶을 살고 있을 때는 가끔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로 많이 부르십니다. 이 말은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만큼 성숙해졌다고 인정해주시고 계신 겁니다. 야곱의 뜻은 도둑이라는 의미로 내 힘과 재주로 살아간다는 뜻이고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 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경험을 자기가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어도 그 이름은 아직도 야곱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 모든 인생과 삶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개별적으로 묻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내 인생을 내가 주관한다고 생각하는 야곱으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절대자이신 하나님만이 내 삶을 주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의 삶을 사시고 계십니까? 오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이 질문에 분명한 고백이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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