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11.10 | 창세기 45장 16-28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45장 16-28절


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17.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19.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버지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버지에게 길에서 드릴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24.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25.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26. 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더니

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새벽 묵상


오늘 말씀의 배경을 설명하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요셉을 판  형들은 애굽에 곡식을 사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만났을 때 요셉은 그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아직 그가 요셉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알아보면서부터 궁금한 것은 아버지와 친동생 베냐민의 안부였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데리고 오게 했고, 베냐민을 보고,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못하고 벅차 오르는 마음을 누르면서 주변에 있던 신하들을 다 물리친 후 형제들만 남아 있는데서 큰 소리로 웁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말고, 한탄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우리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형들보다 먼저 보내신거라”고 오히려 형들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요셉과 형제들의 상봉 소식을 들은 바로가 요셉과 그 형들에게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오게 합니다. 본문 18절에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이 사실을 요셉의 형들이 가나안으로 가서 자기 아버지에게 전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 형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광경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버지에게 거짓말 한 채 20여 년간을 지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진실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거짓된 잘못된 삶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것을 오늘 말씀이 보여 주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28절에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고 하고 45장이 끝이 납니다. 



우리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는 모습속에서, 우리도 마음속의 상처가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17세의 어린 나이에 자기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당한 일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아픔과 상처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가슴속에 맺힌 한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습니까? 요셉도 사람인데 왜 마음에 미움과 원한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면 요셉이 이 미움과 원한,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위로 받았습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만약 요셉이 무엇을 보상 받는 것으로 만족을 얻으려 했다면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형들이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면 그것이 마음의 위로가 되고 그것 때문에 평안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요셉은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 형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그들을 이해하고 위로했습니다. 또한 말뿐만 아니라 자기 형들이 곡식 사러 왔을 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곡식과 돈을 자루 속에 넣어 주었고, 오늘 본문에 보면 양식, 돈, 옷 등을 넉넉히 넣어주고 애굽에만 있는 수레까지 보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위로, 참된 평화는 용서를 구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걸음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내가 용서하고 이해를 할 때 참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적인 만족은 많이 쌓아두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베풀고 많이 나누어 줄 때에 참된 평안이 있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한 겁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어른입니까?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다고 어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와 지위에 관계없이 어른 모습을 가져야 진정한 어른인 겁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못박는 로마 군병들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그리고 스데반 집사도 사람들이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질 때, 온몸이 으스러지면서도 그 사람들을 향해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원수를 용서하시는 우리 주님이 진정한 어른이시고, 스데반과 같은 넓은 가슴을 가지고 있는 집사가 바로 큰 어른입니다. 여러분, 직분을 탐하지 마시고, 넓고 큰 가슴을 가지십시오. 이런 사람이 존경을 받는 어른이며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어른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고 느끼며 살 때 가능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서 “내가 어떻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창39:9)”  감옥에 있을 때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면서도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창40:8)”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꿈을 해석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실겁니다(창41:16)”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요셉의 말을 보면 그 말속에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가능하고, 내가 정직하게 사는 것도 내가 깨끗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므로 내가 범죄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었습니까? 누가 나를 도울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도와주게 아니하시면 아무도 나를 도울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내 마음속에 선한 마음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내가 누구를 돕거나 베풀지 못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려울 때 욥처럼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욥은 자신이 체험하는 환경이 힘들지만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고,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생애에 항상 찬송 받을뿐임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내가 나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야곱이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야곱의 마음이 어떠 했을까요? 본문 27절 마지막 부분에 보니까, “기운이 소생한지라”고 했습니다. 살 맛이 났다는 겁니다.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에게도 이런 기쁜 소식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시대에 나병환자가 주님의 기쁜 소식을 듣고 몸이 깨끗해져서 돌아왔고,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두 다리로 뛰면서 돌아 왔고, 소경은 눈이 떠서 돌아왔습니다. 



만일 야곱이 기쁜 소식을 듣고도 그럴리 없다.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면, 평생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살았을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고 내 죄가 사함받았다는 것을 믿으면, 그때부터 용서의 기쁨이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시므로 내 죄가 용서 받았다고 말해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옛날부터 지은 죄를 끄집어 내가지고 그런 죄에 눌려서 살면 평생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고통이죠. 



여러분 내 죄가 주님이 흘리신 보혈의 피로 씻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죄 사함의 선포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삶의 활기를 주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