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2.11.04 | 창세기 43장 1-14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43장 1-14절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새벽 묵상
어제 우리는 애굽에서 가나안 집으로 돌아온 야곱의 아들들이, 모든 일의 자초지종을 야곱
에게 보고 했습니다. 특별히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애굽에 볼모로 잡혀있는 시므온이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야곱은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 마저 또 빼앗아간다”고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러면서 절대로 베냐민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강하게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1절에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절에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양식을 사 오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야만 하는데, 야곱이 그 일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넷째 아들 유다가 호소합니다. 3절에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드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알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4절에도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절에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야곱이 그 말을 듣고 6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유다는 다시 아버지 야곱에게 8절에,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다” 고 합니다. 지금 야곱에게 달린 식구가 70여명이나 됩니다. 더 이상 지체 하다가는 온 식구들이 굶어 죽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유다는 계속해서 9절에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고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야곱도 결국은 심한 기근에 온 식구들의 굶주림에 직면할 것을 알고, 마침내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 합니다. 13절에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여기서 점점 성화 되어가는 야곱의 귀한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생각이 아들들의 의견보다 합당치 못함을 알고, 자신의 고집을 기꺼이 포기했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때로는 우리의 고집을 꺾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 고집을 내세워서 교회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면 그 고집은 유익하
겠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고집은 자기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고집은 하나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먼 것일뿐 아니라, 서로 화목도 깨는 것이므로, 쓸데없는 고집은 부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서학자 메튜헨리는 말하기를 '지조는 덕이지만, 고집은 덕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아니
잘못된 고집은 덕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죄악이라는 겁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의 고집을 꺽고 아들들의 간청을 허락 하면서 11절에,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선물을 가지고 가라는 겁니다. 그리고 12절에도,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고 말합니다. 곡식 자루에 있던 돈도 다시 갔다 돌려 주라는 겁니다.
지금 야곱이 애굽의 권력자인 총리 대신에게 바칠 선물을 준비하게 하는 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애굽의 총리 대신인 요셉이 어떤 선물보다 자기 동생 베냐민과 아버지 야곱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저들은 알지 못하다는 겁니다. 단지 야곱과 그 아들들은 애굽의 총리를 높은데 앉아 자기들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무서운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그에게 예물을 바쳐 호의를 사려고 한 겁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들이 하나님의 진심을 깨닫지 못한 체, 즉 우리를 도와주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생각도 못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보단, 하나님을 무섭고 두려운 분으로만 알고, 그 앞에서 떨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셉과 형들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이미 우리의 기도보다, 우리의 필요보다 앞서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겁니다.
다행히도 오늘 본문 마지막절, 14절에 야곱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1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
어제 묵상한 36절에서는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며 믿음 없는 고백을 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라며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섭리를 의지하는 야곱의 깊은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잃고,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베냐민을 “잃으면 잃으리로다”라고 고백 하면서, 애굽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한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마치 “죽으면 죽으리이다”고 했던 '에스더'의 결단처럼 비장한 결단이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사랑하는 베냐민 마저 잃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겠다는 겁니다. 이 말은 이제 부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겁니다. 결국 이같은 야곱의 결단이 그의 온 가족을 기근으로부터 구원받게 한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죽었다고 생각한 요셉까지 만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결단이 모든 죄인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결단을 늘 생각 하면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아울러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는 야곱의 많은 변화를 볼 수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변화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섭리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누가? 무엇이? 야곱을 이렇게 변화시켰을까요? 두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많은 고난을 통하여 야곱을 그렇게 성화시키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시련과 고난 중에 있는 분들 계시면, 그런 고난을 통해서 꼭 야곱처럼 점점 더 성화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서 영안이 더욱 밝아지고, 환난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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