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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10.27 | 창세기 40장 9-23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40장 9-23절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새벽 묵상


어제 묵상한 말씀인데 두 관원장이 꿈을 꾸었는데 8절에 보면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고 하면서 몹시 불안해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라고 합니다. 



따라해 봅시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것이 믿는자들의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요셉처럼 하나님께만 대답이 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하기를 바랍니다. 



문제의 열쇠는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아내나 친구에게도 대답은 없습니다. 오직 대답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새벽에 주의 전에 나와서 기도하는 겁니다. 



8절 마지막에서 요셉은 두 관원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어떻게 요셉이 당돌하게도 꿈을 이야기 해달라고 말했을까요? 그꿈의 해석을 하나님께서 내게 가르쳐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요셉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자신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자신감입니다. 



이런 하나님께 대한 자신감이 요셉으로 하여금 남의 나라에 팔려와서 종살이 하면서도, 당당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9절부터 11절까지 술맡은 관원장의 꿈입니다.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는 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12절에보니까 “그 해석이 이러하니” 즉시 해석이 나옵니다. “사흘안에 당신의 전직이 회복되어 다시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될 것이다”라는 겁니다. 



어떻게 머뭇거림도 없이 즉시해몽을 할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늘 바른 관계를 맺고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누가복음 12:11절에도 보면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16-17에도 보면 술맡은 관원장이 좋은 해석을 듣자 옆에 있던 떡굽는 관원장도 나도 해석해 달라고 합니다.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은 “흰떡 세 광주리가 머리에 있고 / 맨 윗광주이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는 겁니다. 18-19절에 요셉이 그 꿈 얘기가 를 듣고 해석을 해줍니다.



19절에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다”는 해석입니다. 즉,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을 것이다”는 해석입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런 좋지 않은 해석은 말해주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잘 모르겠다든지 비슷한 말로 얼버무리며 지나가기 쉬웠을 겁니다. 이왕에 죽을 사람 그동안이라도 마음 편하게 살다가 가라고 말 안해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요셉은 솔직하고 단호하게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숨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설교의 고민이 바로 이런데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보면 혹시 이 말씀에 누가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개인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굽힐수 없어서 그대로 말씀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가정의 아들이 늘 산수 시험에 빵점만 받아오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음에 또 빵점을 받아오면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라. 빵점이 뭐냐?” 그렇게 몇일 뒤 시험을 본 아들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저씨, 다녀오셨어요?” 



다음에 빵점 받으면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는 것은, 공부 잘하라는 뜻인데, 공부하라는 말은 안듣고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만 들었다는 겁니다. 



성도들도 목사가 설교하는 것도 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는 뜻인데 그 본 뜻은 알아듣지 못하고 서운한 말만 잘 알아듣습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술 맡은 관원장은 해석대로 전직이 회복되었고, 22절에는 떡 굽는 관원장은 해석대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마지막 말씀 23절을 보면 다소 의외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당신이 잘 되면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술맡은 관원장은 형편이 바뀌자 까맣게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풀려난 즉시로 자기가 감옥에서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을 겁니다. 매일 매일 손꼽아가며 기다렸을 겁니다. 그런데 요셉은 무려 2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41:1).



이제 모든 희망은 다 사라져 버리고 자신은 이 감옥에서 영영 벗어날 길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2년동안 요셉을 감옥에서 풀려나게 하시지 않은데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 때문에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풀려나자마자 요셉을 기억하고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로 요셉이 풀려났다면, 아마도 요셉은 자기가 풀려나게 된 것이 하나님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일을 잊어 버리므로 이제 요셉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만 달려 있도록 하셨던 겁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큰 그림을 봅시다”



우리에게도 미워하여 동생을 팔아먹는 형들, 보디발 아내, 내게는 너무도 중요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잊어버려서 나를 고통가운데 방치해둔 관원장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수들의 나쁜 의도도 좋은 것으로 활용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냇물이 흐르다가 장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돌아 굽이쳐 흘러야 할 때도 있고, 폭포처럼 곤두박질 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넓은 바다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큰 그림을 보면서 불안해 하거나 조급해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이세상의 어떤 일들도 손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문제도 때가되면 풀어 주실 것을 믿고 참고, 기다리어 승리하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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