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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9.29 | 창세기 29장 15-30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29장 15-30절


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19.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새벽 묵상


외삼촌 라반에게  두 딸이 있었습니다. 언니 레아와 동생 라헬입니다. 그런데 둘 중 야곱은 동생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얼마만큼 사랑했는가 하면, 본문 20절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 라반이 우리 지방에서는 동생이 언니보다 먼저 결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약속을 어기고 언니 레아를 준 겁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라헬을 얻으려면 다시 칠년을 일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야곱은 또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본문 30절을 보면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연예 이야기는 남들 이야기라도 언제 들어도 늘 따뜻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성간에만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연애하듯이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에 빠져서 일만을 사랑하며 일에만 몰두합니다. 어떤 일에 장인이 되고 최고가 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좋아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사랑하고 그것을 연애하듯이 즐깁니다. 이런 학생이 성공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성취합니다. 



사실 모든 일에 이런 연애의 감정이 있어야 즐겁고, 매진할 수 있고,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이런 연애 정신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때 복된 신앙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바른 신앙의 핵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2:37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39절에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신앙의 핵심은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생활은 사랑하는 연애정신처럼 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간사랑도 그렇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바로 이런 연애정신에 입각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야곱도 14년을 라헬을 위하여 섬겼다고 했습니다. 14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것도 젊은 나이에 종처럼 섬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겠다는 각오 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애정신이요 사랑의 힘입니다.



바로 이런 연예정신이 신앙에도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8-9절에 보면 사도바울도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랬습니다. 



예수를 얻기 위하여, 예수와 함께 하기 위하여 자신의 가장 고귀한 것도, 또 값진 어떤 것도 포기하고 버릴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이런 연애정신이 우리의 신앙을 뜨겁게 하는 겁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는 이런 연애정신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연예정신은 어떤 것이냐? 둘 외에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그것만이 유일한 관심입니다. 신앙 안에 바로 선 사람들은 이렇게 오직 주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그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1:20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함이라”고 고백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도 주님이 있어 삶의 의미가 있고, 주님을 믿기에 사는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또 연애정신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가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연애함으로 14년을 수일 같이 보냈다고 했습니다.  연애를 해 보지 못한 분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연애를 해 보신 분들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서 14년을 수일처럼 보냈다는 이 느낌을 아실 겁니다. 



연애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가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예전에 통행금지 시간이 있을 때 연애하다가 시간이 넘어 파출소에서 잠을 잔 이야기들을 종종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게 되면 시간의 흐름이 전혀 의식되지 않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예배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성경 읽는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즐겁고 감격스러운 겁니다. 왜냐하면 연애하듯 주님을 좋아하면서 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늘 예배에 감격이 있고 솟구치는 기쁨이 있는 은혜 충만한 예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또 연애정신은 수고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수고함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수고라면 찾아서라도 하려고 합니다.  그 일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든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기쁨이요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뭔가 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섬기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어느 시골에 믿음 좋은 자매가 살고 있었는데 가정도 어려워 매우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라고 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자기가 예수님이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셨던 커다란 십자가를 지고 천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도 그 자매는 주님이 바로 나의 죄를 대신하셔서 이와 같은 십자가를 지셨구나 생각하면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가고 있었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자매는 힘이 붙여 "주님 너무 힘이 듭니다. 주님은 목수이셨으니까 이 십자가를 조금만 잘라주세요” 주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러라고 하고는 십자가를 잘라주


었습니다. 이제 한결 가벼워 졌습니다. 그러나 또 얼마를 가다보니까 또 십자가가 무거워져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자매는 또 예수님께 십자가를 조금만 잘라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또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잘라주었습니다. 이렇게 세 번이나 십자가를 자르고 잘랐습니다.


이제 천국이 눈앞에 보이는데 깊은 계곡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큰 십자가를 질질 끌고 오더니 계곡에 턱 걸쳐놓으니까 자동적으로 다리가 되어서 그 협곡을 건너는데, 이 자매의 십자가는 세 번씩이나 잘라내고 보니까 너무 짧아서 소용이 없었습니다. 천국은 보이는데 건널 수가 없어 이 자매는 요단강 가에서 목놓아 울고 있는데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쫓아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그 자매는 “아멘! 아멘!” 하다가 잠을 깼고 그 후로는 “주님 어렵습니다. 힘이 듭니다” “제 십자가를 가볍게 해주세요”라고 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지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항상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섬겼다는 겁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만 생각을 합니다. 시간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모든 수고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기쁨이요 감사입니다. 이제는 이상과 같은 연애정신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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