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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살 길을 여신 대제사장

새벽예배 2023.09.19 | 히브리서 10장 11-25절 | 이선기 목사




히브리서 10장 11-25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새벽 묵상


하루살이와 메뚜기와 개구리 이야기를 아십니까?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고 해서 이름이 하루살이인 하루살이가 메뚜기하고 아침부터 놀다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해가 막 지려고 하는데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말합니다. “하루살이야, 벌써 저녁이 되었으니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 하루살이가 메뚜기에게 묻습니다. "내일이 뭔데?" 하루살이는 딱 하루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내일'을 모릅니다. 하루살이가 죽고 나니 메뚜기는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만난 것이 개구리였습니다. 개구리와 놀고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왔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메뚜기야, 겨울 지나고 내년에 만나서 놀자"고 했습니다. 메뚜기가 개구리에게 말합니다. "내년이 뭐야?" 메뚜기는 '내년'을 모릅니다. 딱 1년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정도 사실 것 같습니까? 100살 넘도록 사시겠습니까? 그동안 200살까지 산 사람이 혹시 있었습니까? 저와 여러분도 기껏해야 120살 정도밖에 살 수 없는 200살을 살지 못하는 유한한 인생들입니다. 참 감사한 것은 이렇게 200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200년 이상 계산도 안 될 기간 동안 살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영혼의 고향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여기시고 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부활의 삶,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괴로움도 슬픔도 없는 부활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아닙니까? 감사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 이 기회를 헛되이 낭비하지 말고 잘 준비하시고 사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생이 뭐 있어? 죽으면 다 끝이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하면서 사는 사람을 보시면서 이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 인생아 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어제 말씀드린 대로 히브리서 7장부터 시작해서 오늘과 내일까지 해서 히브리서 10장을 마지막으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결론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율법은 그림자와 같다. 이제 율법은 완성되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번제와 속죄제 등 제사를 받으실 필요가 없다. 단번에 자신을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된 제사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어제 본문이 바로 우리 눈앞에 관한 것이었다면 오늘은 눈을 들어 하늘과 우주를 바라보면서 외치는 히브리서 기자의 큰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눈을 들어 새로운 길로 나아가라. 유대교로 되돌아가지 말로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로운 길 그리스도인의 길로 나아가라. 20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새로운 살길을 바라보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새로운 살길을 걸어갈 소망을 가진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율법의 완성자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린 제사는 1. 첫 번째로 영원한 제사였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단번에 완성하신 제사는 유한한 제사 11절에 나오는 대로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는 유한한 제사가 아니라 단 한번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고 한계도 없고 끝도 없는 그 효과가 무한대인 그런 제사. 즉 영원한 제사라는 사실입니다. 이 제한이 없는 영원한 제사가 그동안의 모든 한계를 극복한 시간적 제한을 뛰어 넘었다는 표현이 11-14절까지 계속해서 나옵니다. 먼저 11절 다시 보십쇼. 뒷 문장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반어법을 쓴 것이죠. 비교되도록 즉 구약의 제사장들이 드린 제사는 잠시 동안만 죄를 없는 것처럼 감추는 것이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는 “언제나” 유효하다. 그 유통기한이 없다. 그런 말입니다. 12절에도 또 나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절을 보십쇼. 아주 특별한 표현까지 쓰면서 그리스도의 제사의 영원성을 표현합니다.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나니” 여기서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한다는 것은 헬라어로 휘포포디온 톤 포돈 아우투라고 발음하는데 의역하면 “원수들을 쓰러뜨리고 발로 딛고 서실 때까지”란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완전한 승리의 표현이죠. 재림하셔서 이 땅을 마지막 심판하실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14절도 보십쇼.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가 얼마나 유한한 인간의 한계와 너무 대조적으로 우리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시간을 초월해 계신 것을 크게 나타내고 싶었으면 이렇게 연속으로 계속 언제나, 영원한, 발등상 되기까지, 영원히 이런 표현을 썼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한계가 있으나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신 분이요.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는 분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5장 10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는데 우리 인간의 자손이 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 인간의 시간적 한계를 초월해 계시고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영원한 분이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늙어가는 것에 너무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이 오는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가족이 아직 예수 믿지 않은 것, 내 자녀가 아직도 시간을 초월하시고 영원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을 괴로워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기회 있을 때 열심히 전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은 뒤끝이 없으신 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7절 보십쇼.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구약의 제사는 또 죄짓고 또 제사 드리면서 계속 이미 용서한 죄를 또 짓고 또 용서하고 이게 뭔가? 이 무슨 다람쥐 쳇바퀴 도는 모습 아닌가? 왜 이런 헛된 죄짓고 용서받기를 반복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제사를 끝내셨으니 완전히 끝이다. 18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즉 이제는 다시 했던 일을 반복할 필요 없다.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상인에게 팔아버린 요셉이 고난을 이겨내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형들에게 자신을 밝히면서 하나님이 뜻이 있으셔서 나를 형님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고 요셉이 형들을 용서했던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런데 창세기 50장 15절에 보면 아버지 야곱이 죽으니까 갑자기 형들이 두려워합니다.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즉 이미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복할까봐, 뒤끝이 있을까봐 걱정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쿨하지 못하고 뒤끝이 있고 보복하고, 속마음을 감추는 악한 죄성이 있으나 하나님은 선하신 분으로 단 한 번에 죄를 용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사를 완성하시고 구원을 이루신 분이심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속에 꽁하고 내가 두고 보자. 반드시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갚아 주리라. 여기 계신 분 중에 지금 그런 마음을 품고 계신 분 혹시 있으십니까? 이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철저히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로마서 12장에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뒤끝이 없으신 하나님 마음을 따라 쿨한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영원한 하나님, 뒤끝이 없으신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할 일은 순전한 믿음으로,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모이고 격려하시고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19절부터 24절까지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주님께서 완성하신 제사,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새로운 길, 살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22절 보십쇼.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즉 구약 시대에 바쳐진 짐승의 피를 뿌림으로 정결케 되는 시대, 율법 시대의 제사가 끝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겉이 아니라 마음에 그 보혈이 뿌려짐으로 깨끗한 심령이 되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즉 순전한 믿음, 정직하고 순결한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래 우리는 자격이 없는 죄인이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우릴 대신해서 죽으셨으니, 주님의 보혈 의지하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도로 나아가시고 찬송하며 나아가시고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새벽기도 하는 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열심히 찬송하는 일, 말씀을 묵상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일. 아주 기본부터 다시 충실히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는 23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소망 붙들고 흔들리지 말라는 표현입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이 미쁘시다라는 표현이 바로 신실하시다는 표현이죠.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만이 약속을 지키신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약속을 분명히 지키시는 하나님.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갈 생각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부활의 나라 소망 붙들고 흔들리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돈 때문에, 육신의 질병 때문에, 자녀 문제 때문에 무엇 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까? 다시 부활의 소망.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었는데 영생, 부활의 특권 주신 허락하신 주님 생각하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바뀝니다. 시편 119편 71절 “고난 받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해 배울 것이 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간증으로 바꾸실 주님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아는 구절 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즉 흩어지지 말고 다시 열심히 모여서 사랑하고 격려하라. 용서받은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열심히 모이라.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는 이 시대에 열심히 모여서 사랑하고 격려하고 세상과 다른 그리스도인이 되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같이 모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그들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열심히 모이시고 사랑하시고 격려하시면서 승리하는 주의 자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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