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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네

새벽예배 2023.06.26 | 사도행전 4장 1-12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4장 1-12절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새벽 묵상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람들 가운데 생긴 유행어 중에 하나로 “살아 있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투리를 써서 “살아 있네”해야 그 맛이 나는 말,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영화에서 최민식씨가 먼저 이 대사를 처음 했고 그 때부터 유행했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아직도 변함없이 생생하고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고 있을 때 쓰는 말 “살아 있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발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보실 때 “아무개 살아 있네” 하시며 감탄하실 살아 있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되지 못해 죽은 교회라고 책망 받은 대표적인 교회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죠? 예 계시록 앞부분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하나인 사데 교회입니다. 저는 에서버두사빌라 해서 앞글자만 따서 7개 교회를 순서대로 외우기도 하고 죽은 교회 죽을 사 자를 써서 사데교회 그렇게 외웁니다. 이 사데 교회는 일곱 교회 중 이단의 특별한 위협이나 외부의 핍박이 가장 적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교적 문화나 주변 환경과 타협해 버렸습니다. 외적인 형식과 모습은 갖추었지만 영적 생명력을 상실했습니다.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혹독하고 무서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미국에서 30년을 목회하면서 신앙잡지 <Pulpit>의 발행자이기도 한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님은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있는 교회를 이렇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생각해 보시면서 주의 깊게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과 주차장등 늘 공간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공간에 대한 염려가 없다. 살아있는 교회는 항상 변한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늘 똑같다.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 소리로 인하여 늘 시끄럽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언제나 조용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하여 쓴다. 그러나 죽어가는 교회는 은행 잔고가 많다. 살아있는 교회는 새 얼굴 이름 알기가 어려워 애를 먹는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해가 바꿔도 언제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있는 교회는 선교 사업이 활발하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있는 교회는 주는 자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생색내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 위에 운행되지만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인간적인 판단으로 가득 차 있다. 살아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언제나 편안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전도하기에 활발하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점점 굳어가는 석회암과 같다 여러분 지금 저와 여러분이 출석하는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입니까? 죽어가는 교회입니까?

여러분 우리교회가 꼭 살아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누가 바뀌면 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바뀌면, 나를 바꾸면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교회가 어떻게 해온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가 되도록 지금부터 나를 바꾸셔서 살아 있는 성도 되셔서 나 때문에 살아있는 성도인 나 때문에 우리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생생한 복음 전파의 현장,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이 초대교회의 모습이 바로 살아있는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유대 교권주의자들이 마침내 이 성령 받은 사도들의 선교 현장에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사도들을 핍박하는 이 상황 속에서도 놀랍게 영혼구원의 역사가 더 많이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핍박이 컸는데 성령의 역사는 더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 사도행전 2장 후반부에는 베드로의 설교로 3000명이 제자가 되었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 4절 보십쇼. 믿는 자의 수가 남자만 약 5000이나 되었더라.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성령이 역사하시는 복음 전파의 생생한 현장이 저와 여러분의 처한 곳에서도 강하게 나타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오늘 본문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면 우선 왜 사도들이 핍박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사두개인들 때문이었습니다. 1절 보십쇼. 유대 교권자들이 나오는데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여기서 이 사두개인들이 2절에 보니까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성령 충만한 사도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부활은 정말 사실이다. 내가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났다 선포하니까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이 찔림을 받아 3절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율법은 해가 진 뒤에 재판하는 것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이튿날까지 가둔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하는 부활 교리가 사두개인들에게 가장 거슬렸고 찔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찔림, 이 거슬림, 이게 바로 복음이 선포되는 생생한 현장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설교 중에 살아있는 설교는 듣는 이들이 찔려야 정상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한국 교회 부흥의 역사는 바로 찔림의 역사였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날 때 성령의 불길이 타오를 때 시작된 것은 바로 찔림이었습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1500명이 모였을 때 길선주 장로는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실 때에 강한 찔림을 받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약 1년 전에 임종을 앞둔 친구가 나를 자신의 집에 불러 부탁했습니다. `길 장로, 나는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소. 내 아내는 그만한 능력이 없으니 자네가 내 재산을 정리해주면 좋겠소. ` 난 그 부인 재산을 관리하던 중 욕심에 겨워 부인의 돈 100달러를 사취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그 돈을 미망인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찔리니까 눈물 흘리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삶이 변화되었다는 것, 길선주 장로뿐만이 아니라 회개의 역사의 불길이 타오르니까 여기 저기서 우후죽순으로 서로 앞다투어 회개하며 자복하며 울며 통회하는 역사가 끊임없이 번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귀에 듣기에 좋은 설교가 좋은 설교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찔려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설교입니다. 살아있는 설교입니다. 은혜받는 분들을 보면 목사님 설교말씀이 어쩜 나를 찍어놓고 나에게만 말씀하나? 내 속을 훤히 보이듯이 설교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겉만 깨끗한 바리새인들의 속에 찔림을 주는 말씀을 하셨기에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대하여 찔림을 받았고 얼마나 찔렸던지 3절에 사도들을 잡아서 가두어 놓았다는 사실, 그냥 여기 본문에는 잡았다..가두었다만 기록되어 있지만 어떠했겠습니까? 분명히 때리고 고문하고 온갖 핍박과 수모를 주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 예배 예배가 찔림 받는 예배가 되시길 바랍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하셨습니다. 상한 심령 그대로, 찔림 받는 모습 그대로 주 앞에 나아오시길 바랍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의 메시지가 유대 사회에 엄청난 혼란을 일으키니까 산헤드린 공회, 즉 유대의 최고 지도자들이 다 긴급 소집이 되었습니다. 6절 보십쇼.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전직 현직 대제사장, 내로라하는 유대 지도자들 명단입니다. 이렇게 다 모여 7절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청문회를 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이런 질문과 문책에 8절 이후에 베드로가 다시 성령이 충만하여 선포합니다. 신기한 것은 어부 출신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게 되니까 9절 실제 앉은뱅이가 건강하게 된 예를 조리 있게 들면서 10절 정확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10절을 자세히 보십쇼.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그냥 쓰여진 문장자체만 읽어봐도 참 조리 있는 문장 아닙니까? 최고 유대 지도자들 앞에서 떨지도 않고 그대로 직설적으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인 그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부활의 예수께서 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너희 앞에 지금 서있지 않은가? 보라...하고서 아주 통쾌하게 복음 제시를 합니다. 11절에는 심지어 시편 118편 22절을 인용하여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집에 거룩한 초석이 되었다는 표현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이런 통쾌한 답변을 했을까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니까 성령께서 그 입을 주관하시니까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12절에는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한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정말 이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오늘 본문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강하게 답변하니까 내일 본문인 13절 14절 보십쇼. 13절에는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14절 마지막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대하게 말했더니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구변과 지혜 주신대로 말했더니 다들 그 말 잘하는 유대 지도자들이 다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더라 그 말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살아있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찔림이 일어나고 두 번째로 이렇게 핍박이 있어도 그 핍박의 순간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더 좋은 계기가 되어 통쾌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상황이 와도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심지어 병원에 아파서 들어가도 낙심할 것이 아니라 거기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음 전파의 생생한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05년에 제가 몸에 계란만한 종양이 있어서 목사고시 보고 다음날 8시간 수술하러 들어갔다는 말씀 드린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수술하러 들어간 것이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의 생생한 복음 전파의 통쾌함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3살에 어려운 수술과 좋은 결과, 잠깐이지만 죽음의 문 앞에 서 보니 33살 내가 예수님만큼 살았구나 이제 수술 잘 끝내고 건강해지면 앞으로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구나..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6인실 수술실에 있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제게 병원심방을 와서 옆에 있는 환자와 가족 분들이 제가 무슨 연예인인줄 알았답니다..저렇게 얼굴 큰 연애인 누구지? 이랬는데 보니까 목사님이구나. 예수 믿으면 저렇게 사랑을 받는구나. 전도가 자연스럽게 되더라구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니까 병원에 있었던 것이 오히려 복음 전파의 생생한 경험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마지막 절에 아주 복음의 쐐기를 박습니다. 12절 보십시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찔림, 통쾌함, 확고함, 이 세 가지가 다 나타나는 교회 우리 교회가 저와 여러분이 출석하는 모든 교회가 “교회 살아 있네!”의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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