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3.18 | 히브리서 11장 33-40절 | 구진모 목사



히브리서 11장 33-40절


33절.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절.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절.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절.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절.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순절 새벽 묵상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히11장이 성경에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면서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의 정의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속담에 "믿음이 없다는 것은 고삐없는 말과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입장에서 보면 고삐란 자신을 어지간히 괴롭히는 물건입니다. 고삐를 잡아 챌 때마다 그 턱뼈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것 때문에 몸집 큰 말이 코흘리개 어린 아이한테도 순순히 끌려 다니는 겁니다.  아무튼 말 고삐는 말한테는 몹씨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그 고삐가 말을 인도합니다. 고통스럽지만 그 고삐에 이끌려 가다보면 어느새 푸른 초장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말이 고삐의 인도를 받듯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마도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일 겁니다. 또한 반대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믿음없이 사는 사람.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1장 전체를 다 읽으면 성경에 소개된 믿음으로 살았던 여러 인물들을 만나게 되며, 그들이 가졌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그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첫째는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8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저항하고 반항하는 것은 힘있고, 순종하는 것은 나약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입니다. 아래서 위로 퍼올리는 물가지고 발전기를 돌리지 않습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 가지고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겁니다. 즉, 저항하는 힘보다 순응하는 힘이 더크고 강하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일생동안 여러차례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을 받았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게 하나님은 명확한 조건의 제시도 없이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명령을 했을 때 아브라함은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100세에 낳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도 역시 무조건 순종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과 함께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의 결과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복 되게 하셨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셨고, 복의 근원이 되게하셔서, 심지어는 그를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주고, 그를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순종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랍고 복된 겁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로 구별됩니다. 하나는 순종하고 복받은 사람들과 불순종하고 저주받은 사람들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던 롯의 처는 불순종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요나는 불순종하다가 풍랑을 만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사울왕은 불순종하다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패가 망신을 당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을 다 받았습니다.


순종의 몇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1)힘들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2)손해가 되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3)억지로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4)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은 아멘입니다. 아멘은 곧 인정하고 순종하겠다는 고백인 겁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마귀에게 순종하다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순종은 복받는 비결이지만 불순종은 심판의 조건이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된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을 보면, 소망이 있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26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한 것은 “상주심을 바라 봄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을 살면서도 항상 미래를 보는 희망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23절을 보면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에도 보면,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했고, 믿음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고, 34절에는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했고, 칼날을 피하기도 했고, 전쟁에서도 이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38절을 보면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처럼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끈질긴 힘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다면 인내할 수 있고, 고난이 겁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으면 삶의 안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소망이 없으면 삶의 안정이 없습니다. 


그럼 그 소망이 어떤 소망입니까? 천국의 소망입니다. 


우리 가운데 천국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끔 천국을 보고 왔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개인의 신앙체험이지, 우리 모두의 신앙체험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갔다 왔기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눈으로 보았기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20:29을 보면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자들은 복되도다”고 했습니다. 즉, 믿음이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는 겁니다. 이 천국 소망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게하고, 장차 될 일을 인내하며 기다리게 해 주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과 소망은 뗄레야 뗄수가 없는 겁니다.


셋째로 오늘 히브리서 11장에서 소개되는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본문 38절은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도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36절을 보면,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같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절에는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학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35절을 보면    “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이처럼 어렵고 힘든, 고통과 죽음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수 있었던 것은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세요. 금신상앞에 절하지 아니하면 뜨거운 풀무불속에 집어 넣겠다는 왕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왕보다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우리를 풀무불속에 집어 넣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풀무불속에서도 건져내실 것이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되지 않는다해도 우리는 금신상 앞에 절할 수 없다라고 하는 세 청년의 신앙 앞에서는 왕도 어쩌지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왕 믿는것, 세상도, 환경도 우리 믿음을 어쩌지 못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으며, 천국을 믿었기에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있었고, 부활의 신앙을 가졌기에 어떤 환난과 절망과 시련도, 심지어는 죽음도 견디고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이기며,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